[20대 자원봉사자 '체험 혼탁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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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짐작은 했지만 선거판이라는 게 너무 혼탁하더군요. 소신이나 원칙도 없고 너나할것없이 무조건 붙고 보자는 식이어서 실망이 컸습니다." 6.4 지방선거때 경기도 A시 시장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Z씨의 선거운동본부에서 자원봉사요원으로 일한 金민철 (가명.26.서울 Y대졸.서울성북구돈암동) 씨. 사회경험도 쌓을 겸 호기심으로 접근했던 金씨의 눈에 비친 선거운동 현장은 그러나 실망 투성이였다.

우선 선거사무실 분위기가 기대했던 것과 전혀 딴판이었다. 상황실에서 일한 20여명의 사무요원중 순수 자원봉사자는 金씨 혼자뿐이었다.

나머지는 선거철마다 돈을 위해 각 후보 사무실을 떠도는 '철새 운동원' 과 후보의 친인척들. 그들에게서는 막연히 생각했던 정치적 소신.철학도 느껴지지 않았다.

또 선거운동원 운용도 선거법 규정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Z후보측의 적법한 유급 선거사무요원은 90여명. 그러나 실제로는 2백여명의 유급 운동원을 동원하고 있었다.

"저를 처음엔 선관위에 선거요원으로 등록시키더군요. 그런데 며칠 지나자 선거요원증을 회수해 가더니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했습니다. 전화홍보요원으로 일하는 아주머니 30여명도 운동원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시간당 3천원씩 급여를 지급했어요. 대략 인건비로만 1억여원을 쓰는 것 같더군요. "

구태의연한 상호비방.흑색선전 전략도 金씨를 실망시켰다. 매일 후보들이 발표하는 선거용 성명서는 상대후보의 여자관계.개인비리 등으로 가득차 있었다.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아야 할 공약은 대개 알맹이가 없거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것뿐이었다.

"상대후보 Q씨의 대변인은 Q씨의 비리를 꿰뚫고 있어 영입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지난 95년 6.27선거때는 Q씨의 경쟁후보 진영에서 일했더라고요. " 金씨는 "직접 들어가 본 선거판은 온갖 편법이 난무했다" 며 "공명선거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 말했다.

최익재.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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