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말이 통하는 지도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6일부터 있을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방미 (訪美) 는 큰 성공을 거둘 것이란 전망이 많다. 우선 미국인들은 자유민주화 투쟁을 했던 金대통령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또 미국내 주요 인사들은 80년말 사형선고받은 金대통령을 미국이 구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에 목숨을 신세진 한 나라의 지도자가 국가 수반이 돼 한때 유배생활했던 미국을 다시 찾는다는 데 대해 내심 흐뭇해 하는 것이다.

미국이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의 전도사를 자임하는 아시아의 지도자,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는 한국대통령 등의 이미지도 金대통령이 워싱턴 조야의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조건들이다.

특히 핵확산금지 노력에 무게를 실었던 미국의 자존심에 찬물을 끼얹은 인도와 파키스탄, 미국이 오랫동안 지지했던 인도네시아 수하르토의 몰락, 안개속을 헤매는 중동평화 협상 등 클린턴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金대통령의 방미는 미국 정가에 청량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환영받는 방문이기에 金대통령은 그에 걸맞은 실속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金대통령이 환대받는 진정한 이유는 이번 방문길에서 한.미 정상이 심각하게 흥정해야 할 거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는 마당이다.

그렇다면 金대통령이 이번 방문길에 가장 신경써야 할 일은 미국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이다.

金대통령이 임기 내내 씨름해야 할 경제위기 극복은 미국 대통령의 지원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될 문제며 남북관계 역시 미국 대통령의 생각에 크게 영향받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국익이 앞서는 국가관계라지만 정상간에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국가간에도 내실있는 관계구축이 가능하다.

'말이 통하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클린턴에게 깊이 심어주는 것이 金대통령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길정우 워싱턴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