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을 찾아서]의사시인 김춘추씨 첫시집 '하늘목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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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버들강아지/눈뜨니//미운 겨울 치마/보리밭에 걸어 놓고//종다리/노래되어/삐르르 삐르르 날다가//아지랭이 무동 타고/아롱아롱 멀어진다" (시 '시골 처녀나비' 全文) 동화 속에서 악당을 물리치는 주인공은 왜 늘 어린 소년 아니면 소녀일까. 혼탁한 세상 그 무엇으로도 아이들의 선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일까. 시인 김춘추 (54) 씨는 백혈병을 치료하는 의사. 그 무서운 질병과 싸우기 위해 가슴 속엔 늘 아롱거리는 나비 같은 순수를 품고 있었나 보다.

98년 '현대시학' 으로 등단한 金씨의 첫 시집 '하늘 목장' (문학세계사刊)에는 그가 간직해 왔던 아름다운 세상이 들어 있다.

자연의 소중함과 고향의 토속적인 정취, 생명에 대한 경이들을 혹시 흐트러 놓기라도 할 새라 가만 가만 조심스런 시어로 옮겨 놓았다.

"까치봄 봄색시는/몸풀고 누웠다가/꽃신 한짝 남겨놓고/바람처럼 날아갔다//벤자리떼가 데불고 온/고사리장마 떼구름도/시방은, 한라산 어깻죽지/한쪽 귀퉁이에 둥지를 텄다" (시 '마라도' 中) 때로 그것들은 우리가 더 이상 만날 수 없거나 잃어가고 있는 것들. 金씨의 유년시절에 흐드러졌을 엉겅퀴.패랭이.질경이.달개비들이다.

그러한 것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영원한 그리움으로 자리잡아 金씨의 시집에는 '하늘 목장' '적십자성' '독후감' 등 유난히 별들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다.

어쩌다 현대문명과 도시를 소재로 한 시들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다만 그의 가슴 속에 들어있는 고향과 대비시키기 위한 것. 金씨는 눈만 감아도 그 곳으로 떠나곤 한다.

"바람이 불 적마다/별떼는/백조가 되어 미리내 고향길을/하늘하늘 날아간다//대낮에도 날아간다/눈 감으면 - " (시 '북십자성' 中) 양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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