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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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제3장 함부로 쏜 화살

그 길로 차를 달린 일행은 오던 길을 되짚어서 봉평을 향해 달렸다. 봉평에 당도한 것은 다음날 새벽 1시께였다.

봉평 여인숙에서 새우잠으로 피곤을 달랜 뒤 아침 일찍 옥산대의 휘닉스파크로 찾아갔다. 부근에 있는 식당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머지는 초입길에 좌판을 펴고 싸구려를 불러 몽땅 팔아넘기는 데 성공했다.

생짜로 먹는 참나물은 오래 싣고 다니며 팔 수는 없는 생물이었기 때문에 깨끗이 처분하기까지는 사뭇 초조했었다. 변씨가 주문진 봉환에게 전화를 걸어본 것은 그날 오후 옥산대에서였다.

식당으로 직접 걸지 않고 형식이가 있는 자신의 집으로 걸었다. 형식의 대답으로는 봉환이가 하루도 빠짐없이 그들의 자취방으로 와서 잠을 잔다는 것이었다.

묻지 않아도 그때까지 묵호댁이 가게를 지키고 있다는 증거였다. 묵호댁과의 해결이 손쉬울 것이라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주문진 외곽을 빙빙 돌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해결이 날 것이란 예측부터가 안이한 판단이었다는 것이 확실해진 셈이었다. 자신이 개입하지 않으면 딱부러진 결말 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철규와 상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논의 끝에 벌써부터 집 걱정이 태산 같은 윤씨와 동행으로 가기 싫었던 주문진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주문진에 도착한 것은 이튿날 오후였다. 집에 당도하는 길로 전화를 걸어 봉환을 자취방으로 불렀다.

통감자라는 별호를 가진 봉환도 여자에게 시달림을 받았을 땐 어쩔 수가 없었던지 신색이 가위 반쪽으로 수척해져 있었다. 허둥지둥 방으로 들어서는 봉환을 보며 변씨는 볼멘소리부터 내쏟았다.

"자네 몰골 보자니 그동안 끼니조차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것 같구만?" "형님요, 말도 마소. 지금 같아서는 누가 보는 사람이 없으면, 자살이라도 하고 싶으이더. 세상에 저 년 같은 쇠고집은 보다 보다 처음 보겠습니더. 돈을 준다캐도 코빵구도 안 뀌고, 공갈을 쳐도 끄떡도 안하고, 소 죽은 넋을 뒤집어 썼는지 사람만 멀건히 쳐다본다 카이요. 두꺼비 낯짝에 물 퍼붓기라 카디, 협박도 안 듣고 공갈도 안 듣고 구슬러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허벅지를 물어뜯어도 꿈쩍도 안한다 카이요. 형님요. 내가 우짜다가 이런 지옥으로 떨어졌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더. " 형식이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대견스러웠던지 꿀을 탄 물그릇을 방으로 디밀어 주었다.

피로를 풀라는 뜻이었다. 어디서 난 꿀인지는 몰랐지만, 제가 먹지 않고 아비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 심사가 가슴 뜨끔하게 대견스러웠다.

"당초부터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수작이었어. 돈을 바라고 찾아온 사람이 아니라면, 돈물치를 목구멍에 쑤셔박는다 해서 담판이 났을까? 봉환이가 어떻게 대처하리란 것까지 모두 계산하고 찾아온 여잔데 공갈협박 아니라,가랭이를 찢는다 해도 먹혀들겠나? 떡줄 놈은 고개 너머에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더라고, 소득 없는 일에 공연히 시간만 허비하고 마음 고생만 공중 날렸구만. 내가 일행보다 먼저 달려온 것은 봉환에게 품앗이라도 될까 해서였는데, 섣불리 끼어들었다간 나까지 똥물 뒤집어쓰기 십상이겠구만. " 봉환은 견골이 패도록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딴 방책이 없어. 언제 해결날지도 모를 문제를 두고 승희를 하염없이 밖으로만 나돌게 놔둘 수도 없지 않은가. 승희가 묵호댁의 본색을 모르고 있고, 묵호댁이 주둥이를 헤프게 놀릴 여자가 아니란 보장만 있다면, 우리끼리 알고 있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알고 승희를 불러들여야지. 그냥 두면, 엉뚱한 곳에서 들통 날지도 모르지. 그런데 승희의 눈치를 보자니 행중과 같이 난전꾼으로 나서려고 작정을 단단히 가진 눈치더란 말이야. " "딴 도리가 없습니더. 당분간은 지가 하고 싶은대로 놔둬야지요. 묵호댁이 손님 접대는 또 여축없이 치르데요. 승희가 없어도 가게는 당분간 별 탈이 없을 것 같습니더. "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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