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협 모니터 자원봉사 유형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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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모니터 자원봉사자 맞아요. 어디 명함이라도 좀 봅시다." 공선협 모니터 자원봉사자 유형희 (柳亨熙.27.여.서울마포구합정동) 씨는 요즘 이번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과의 입씨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3년 동안 컴퓨터 강사로 일하다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를 만나 실직,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그는 선거운동원들로부터 '없는 명함' 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시달릴 땐 짜증보다도 선거감시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벽' 을 실감하곤 한다.

하지만 柳씨는 선거판의 '찬밥 대우' 에 오히려 오기가 생겨 끝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오늘도 선거판 곳곳을 누빈다.

말이 선거감시지 오전8시쯤 집을 나서 오후7시쯤 귀가 때까지 계속되는 柳씨의 일과는 거의 매일 후보들과의 숨바꼭질이다.

모니터 활동의 기본인 '1일 활동보고서' 를 작성하려면 후보의 하루 선거운동 일정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선거사무원들에게 후보의 행방을 물으면 "어디쯤 있을 것" 이라며 정확한 위치를 얼버무리기 일쑤다.

하지만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다 보면 대충 행선지는 알 수 있게 되고, 즉시 그쪽으로 쫓아가 선거용 차량부터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차량 주변 1백m 이내에 후보와 운동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얼마 안되는 기간에나마 터득했기 때문이다.

아예 행선지 자체도 알려주지 않을 경우엔 다소 꺼림칙 하지만 전화로 구민을 가장해 '후보님의 위치' 를 묻는 요령도 생겼다. 애써 후보를 찾아나서는 이유에 대해 柳씨는 "모니터 요원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게 후보들에게 긴장감을 줘 혹시 있을지 모를 탈법을 조금이나마 방지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남은 선거운동기간은 4일. 柳씨가 후보의 궤적을 찾아 파는 '다리품' 이 하루 평균 8㎞ 이상씩이니 아직도 80여리나 고행길이 남은 셈이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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