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잇단 예멘 참사 … 테러, 강 건너 불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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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지난 3월 한국인 관광객 4명이 자폭 테러에 희생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예멘에서 다시금 한국인 여성이 납치·살해되는 비극이 발생했다. 다국적 의료봉사단체 ‘월드와이드서비스’ 소속인 엄영선씨는 다른 단원 8명과 함께 실종됐다가 15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엄씨를 제외한 나머지 단원이 모두 유럽인이란 점에서 이번 피살 사건이 특별히 한국인을 겨냥한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연간 출국자 수가 1200만 명을 넘어선 요즘, 한국인들이 언제·어디서든 외국인 대상의 무차별적 테러에 노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예멘에서의 잇따른 참사를 계기로 정부와 국민 모두 테러에 대한 경각심을 새롭게 일깨우지 않으면 안 된다.

아직까지 이번 사건의 전모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다만, 예멘에서 발생한 통상적인 외국인 납치와 달리 몸값을 달라거나 정치적 요구를 하지 않은 점에서 국제 테러단체 알카에다를 배후로 지목하는 설이 나돈다. 범세계적인 소탕작전과 경제난으로 위기를 맞은 알카에다가 얼마 전부터 예멘 일대를 새 근거지로 삼고 전열 구축에 나섰기 때문이다. 예멘 정부의 진상 조사 결과 지난 3월 발생한 테러도 알카에다가 조직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 자행한 걸로 드러났다고 한다. 따라서 정부는 예멘을 포함해 알카에다가 준동하는 지역 내 교민 및 여행객의 안전대책을 철저히 강구해야 한다. 현재 여행제한지역인 예멘을 아프가니스탄·소말리아처럼 여행금지구역으로 위험 등급을 높여 지정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 역시 출국 전에 현지의 테러 위험을 면밀히 따져 보는 등 스스로 안전의식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테러 근절 움직임에도 적극 동참하는 방안을 검토할 때다. 적잖은 국민이 테러에 희생된 마당에 대(對)테러 전을 언제까지 강 건너 불 보듯 할 순 없다. 한국의 국력에 걸맞은 기여를 하는 한편 각국 정부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 테러 예방 및 대처 능력을 한층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