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상처 씻고 다시뛰는 오뚝이 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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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5천여개 상품중 이익을 내는 품목이 10여개 뿐이라니 말이 안된다. " "업계 1위라는 사실만 믿고 경영층이 너무 방만한 운영을 해 온 것은 아닌가. 경영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는 주주총회 장면이 아니다. 1월초 문구업체 ㈜모닝글로리가 부도로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자 긴급 소집된 직원토론회에서 직원들과 경영진들이 자기반성부터 해야 된다며 쏟아낸 뼈아픈 말들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 부도 직후 전년대비 26% 수준으로 떨어졌던 매출액이 최근 70% 수준으로 회복됐다. 수출 역시 동남아 시장의 급격한 위축에도 불구하고 지난달까지 1백21만달러를 기록, 지난해의 80%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기업에게 '부도' 는 법정에서의 '사형선고' 나 마찬가지. 그러나 모닝글로리처럼 한번의 좌절에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부도가 끝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닝글로리는 지금까지 수동적 영업에 머물렀다는 자기반성을 통해 보다 공격적 영업으로 무장했다. 대형 대리점의 연쇄부도 때문에 본사까지 무너지게 된 점을 감안, 10여개의 부도 대리점을 모두 직영화해 유통망을 튼튼히 했다.

또 지난해말 79개였던 해외 체인점을 1백개로 늘렸다. 극도로 위축된 내수시장보다는 수출에서 살길을 찾아보자는 생각에서다.

이 회사 황귀선 부사장은 "수출이 최근 급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협력업체나 직원들에게 다시 부도의 충격을 안기는 일은 없을 것" 이라고 다짐했다.

한때 세계 3대 악기 메이커로 명성을 날리던 삼익악기가 부도를 낸 것은 96년10월. 그러나 이 회사 부평공장에는 법정관리중인 회사에서 느껴지기 마련인 어두운 그림자는 찾을 수 없다. 올들어 수출이 작년 같은기간보다 무려 5백% 이상 늘어 하루 4시간의 야간작업을 해야만 물량을 댈수 있을 정도다. 법정관리 업체로는 이례적으로 최근 생산직 사원 2백명을 신규채용하기도 했다.

이 회사 한 간부는 "경기침체로 부동산매각등 자구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지만 그간 보여준 노사화합과 수출경쟁력 회복으로 옛 명성을 되찾을 것" 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주방기기 전문업체 셰프라인이 무너진 것은 IMF 직후인 지난해 12월. 그러나 부도 3개월만에 신속하게 화의 결정이 내려지자 노사 모두 회사 재기에 발벗고 나섰다.

셰프라인은 어려운 상황임에도 감원을 하지 않았다. 회사 회생에는 직원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수적이라고 판단, 직원들의 사기를 꺾지 말자는 것이었다.

직원들도 회사 회생에 발벗고 나섰다. 근로시간을 2시간 연장하고 봉급의 20%를 너도 나도 내놓았다. 환율상승에다 때마침 할로겐등 전기용품이 인기를 끌면서 수출도 크게 늘고 있다.

올 수출목표도 지난해 1천6백만달러에서 3천만달러로 배 가까이 늘려 잡았다.

이 회사 김명석 사장은 "이제 시작이다. 아픔을 겪었던 만큼 우리는 더 크게 일어날 수 있을 것" 이라고 자신했다.

김준현.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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