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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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승희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정말 나선 김에 그래 버릴래요?" "자신있어?" "변선생만 좋다면 못할 거 없죠. " "농담이 진담될라. " "농담이 진담된 인생사례가 얼마나 많은데요. " "이런 너스레하구선. 오랜만에 소풍 나와서 입맛 가시는 소리 작작 떠들어. 내가 그 야물딱진 속내를 몰랐다면 질정찮은 놈이 깜박 속아서, 그럼 가자 할 뻔했네. 그게 아냐. 승희 협박에 내가 엇 뜨거라 해서 주선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어. 두말 거들 것도 없이 봉환이 하고 사이가 무리없이 잘 되라고 거든 일이란 것만 알고 있어. " "정말이세요?" "정말 아니면 내 손구락에다 장을 지져라. " "오징어 순대나 맛보세요. 묵호댁 솜씨예요. " 그 여자 별호가 원래는 양과부였다는 말이 목젖까지 차올라 간지럽히고 있는 것 같았던 변씨는 그 순간 침을 꿀꺽 삼켜버렸다.

그러나 내쫓아버릴 여자라는 선입감이 앞선 탓인지, 승희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오징어 순대는 생목만 턱턱 막힐 뿐 본래의 고소하고 쫄깃거리는 진미를 느낄 수 없었다.

오징어를 이용한 특이한 먹거리중의 하나인 오징어 순대의 원조는 본래 채낚기 어선의 어부들이었다.

언젠가 당일발이 채낚기 어선을 탔던 어부들이 기관고장으로 오랫동안 표류하던 중에 배 위에서, 창자를 후벼낸 오징어의 뱃속에 남아있던 찬거리를 대신 채우고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승희는 한술 더 떠서 행중을 따라다니면서 오징어 순대를 팔아보면, 잇속이 있지 않겠느냐고 은근히 운을 떼고 있었다.

그러나 못 들은 척하고 있는 변씨의 눈길은 삼척에서 북평으로 들어오는 들머리 길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가 벌써 아침 8시. 아니나 다를까. 눈에 익은 용달트럭이 금방 고가차도 아래를 빠져나와 장텃길로 느릿느릿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거리가 멀었으므로 냉큼 달려가지는 않고 좌판 펼 자리를 탐색하면서 기웃거리고 있는 자동차의 꽁무니에만 시선을 박고 있었다.

자동차의 꽁무니가 좁은 이면도로 안쪽으로 꺾이어 진입하는 것을 보고 지켜보고 있던 변씨는 그제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두 사람이 용달트럭으로 다가갔을 때는, 아직도 좌판 펼 자리를 물색 중에 있었다.

물론 세 사람은 느닷없이 나타난 두 사람을 발견하고 간이 뚝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놀랐다.

두 사람이 나타난 것보다는 주문진에서 무슨 난리법석이라도 벌어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소동도 없었다고 설복을 시키는 사이에 맞춤해서 점찍어두었던 난전자리에는 어느새 새빨간 딸기 장수와 따끈따끈한 어묵 장수의 리어카 두대가 들어와 채비를 하고 있었다.

눈치없이 지체하다간 곱다시 이면도로 구석진 곳으로 밀려나 좌판을 펴게 될 조짐이었다.

눈치 빠른 태호가 어느새 어묵장수에게 다가가 허리를 조아리면서 벌써 그들 일행이 점지해둔 장소라고 양해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입성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어묵장수도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점지한 자리가 아니라, 삼국시대부터 말뚝을 박아둔 자리라 해도 자기 먼저 들어앉은 자리인 이상 비켜줄 수 없다고 버티었다.

승희가 볼 적엔 서로 한 뼘 씩만 양보하면, 될 것 같은 하찮은 장소 하나를 두고 태호와 어묵장수는 주먹질이 오가지만 않았을 뿐, 쌍방간에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자리를 두고 다투고 있었다.

철규나 윤씨도 수수방관하고 있을 뿐 만류하려는 기색이 아니었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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