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아프리카에 무기스캔들 회오리 블레어號 첫 시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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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년째 순항을 거듭해 온 영국의 '블레어호' (號)가 무기스캔들이란 암초에 부딪치면서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영국 정부가 쿠데타를 지원하기 위해 유엔의 무기금수조치를 위반하고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대한 자국 회사의 무기 수출을 묵인했다는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토니 블레어 정부는 일단 무기수출 사실에 대해 아는 바 없다며 강력히 부인하고 나왔다. 로빈 쿡 외무장관은 사전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사임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론들은 11일에 이어 12일에도 블레어 정부가 배후에서 쿠데타를 조종하고 무기지원에 개입해 왔다는 새로운 사실들을 앞다퉈 폭로, 블레어 정부를 곤경에 빠뜨렸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과거 자국의 식민지였던 시에라리온에서 지난해 5월 군의 쿠데타로 아마드 테잔 카바 대통령이 축출되자 역 (逆)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것. 영국 정부는 자국의 샌드라인이라는 회사를 통해 용병 4만명을 모집하고 1백50t의 AK - 47소총과 박격포.헬리콥터를 공급, 올 2월 작전을 성공시켜 카바 대통령을 복귀시켰다. 게다가 문제의 샌드라인사는 역쿠데타와 관련해 영국 및 미국 정부의 관계자들에게 준비상황을 보고했고 무기지원이 영국 정부의 허락에 따른 것이라며 블레어 정부의 주장을 일축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블레어 총리는 12일 "민선으로 당선된 민주정권을 회복시킨 정당한 행위" 라고 개입사실을 간접 시인했다. 야당인 보수당측에서 요구하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한 청문회가 열릴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블레어 정부로선 도덕성에 적잖은 상처를 입게 됐다.

고대훈 기자 〈coch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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