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행의 옴부즈맨칼럼]왜 '비아그라'로 표기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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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비아그라' 인가, '바이애그라' 인가. 요즘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키면서 모든 매스컴의 각광을 받고 있는 발기부전 치료제 'VIAGRA' 의 우리말 표기를 에워싸고 우리나라 신문들은 완전히 양분 (兩分) 된 느낌이다.

중앙일보를 비롯한 몇 신문은 '비아그라' 로 쓰고 있는 반면 여타 신문들은 '바이애그라' 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의 처지에서 보면 이런 일이란 그야말로 독자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고, 심하게 말하면 독자를 우롱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아그라' 와 '바이애그라' 가 각기 다른 약의 이름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서 그런 표기의 차이가 나온 것인지를 해명하고, 올바른 표기는 어느 쪽인지를 분명히 해야 할 책임이 언론쪽에 있음을 지적해 두고 싶다. 더군다나 오늘날 외래어 표기에 관해선 통일된 준칙이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잘잘못을 가리는 일이란 결코 복잡하거나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런 책임의식은 더욱 강조돼야 할 일이 아닐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해명이나 책임의식을 느끼는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바이애그라' 로 표기한 일부신문이 '비아그라' 가 아니라 '바이애그라' 가 옳다는 주장을 했을 뿐이다. 그것도 그 약의 제조회사인 파이저사가 공식으로 '바이애그라' 로 발음한다고 밝혔다고 하면서도 발음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덧붙였을 따름이다.

물론 'VIAGRA' 를 어떻게 발음하느냐의 문제는 영어권 (英語圈) 과 비영어권 (非英語圈) 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어권' 에선 '바이애그라' 로 발음할 것이고 '비영어권' , 특히 라틴계에선 '비아그라' 로 발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도 '비아그라' 로 발음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인가. 하긴 우리나라도 언어체계상 영어권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신문이란 어디까지나 현지에서 쓰는 발음대로 적는 것이 원칙이며, 그런 원칙에 따른다면 미국의 TV 뉴스나 특집에서 '바이애그라' 라고 발음하는 것을 애써 외면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제조회사조차 공식적으로 '바이애그라' 로 부르는 것을 우리나라에서 구태여 라틴어의 발음체계로 표기할 까닭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바이애그라' 도 'VITAMIN' 처럼 '바이타민' 또는 '비타민' 두갈래로 발음하는 것이 모두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법도 하다.

이밖에 일부신문이 '비아그라' 로 표기하는 주요 이유로 이 약의 독점판매권을 갖는 국내회사가 그렇게 쓰기로 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한다.하지만 첫 보도부터 '비아그라' 로 했다는 것은 어쨌든 뒷맛을 씁쓸하게 하는 일이다.

'바이애그라' 는 미국에서 신약발매의 신기록을 세웠고, 그에따라 파이저사의 주가 (株價) 도 폭등했다고 보도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일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약이 갖는 효능 때문인데, 그에 곁들여 '바이애그라' 라는 상표가 갖는 이미지도 대단한 것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바이애그라' 는 '힘' 또는 '생명력' 을 뜻하는 '바이애' 와 '즐거움' 또는 '남성의 성분비물' 을 상징하는 '그라' 의 합성어 (合成語) 이기 때문에 이미지로서도 대단한 파급효과를 지니는 것이라는 풀이가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문명사 (文明史) 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의 욕망이란 네가지의 요인으로 집약할 수 있거니와 이것은 영원불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 (富) 와 권력 (權力) , 그리고 성 (性) 과 무병장수 (無病長壽)가 그것인데, 특히 후자 (後者) 의 두가지, 즉 성과 무병장수는 신약의 발명과 직.간접으로 연관을 갖는다. '바이애그라' 가 새로운 성혁명 (性革命) 의 기폭제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상황은 그것이 갖는 역사적 함의 (含意) 를 웅변해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앙일보를 보면 신약의 부작용 뿐만 아니라 모든 궁금증이 풀리는 느낌이 든다.

이규행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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