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의 뉴욕읽기]파란색이 노란색보다 우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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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퇴근길, 느지막히 뉴욕시 지하철을 타면 특이한 풍경을 본다. 승객들이 앉아서, 혹은 서서 신문이나 책을 보는데 그 언어가 각각이다.

영어는 물론이고 스페인어.중국어.러시아어.폴란드어.아랍어.일본어, 나로서는 국적조차 알 수 없는 언어, 그리고 내가 들고있는 한국어 신문 등. 미국이란 나라가 본래 제각각 어디선가 떠나와 사는 사람들 (네이티브 인디언을 제외하곤) 로 이루어진 나라지만 뉴욕시는 특히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미국을 가리켜 '멜팅 포트' (용광로) 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대신 '모자이크' 란 표현을 쓴다. 각 인종이 지닌 자기 색깔이 그리 쉬 녹아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억지로 녹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러 색깔이 모여 제 색깔을 지닌 채 조화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모자이크' 론에 있다.

이 세계는 여러 인종.나라.부족이 섞여 서로 주고받으며 사는 세계로 가고 있다.

그러한 추세는 가속도가 붙고 있으며, 언젠가는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미국 가정에서 쓰는 물건들이 평균 30여 개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통계를 본 일이 있지만, 한국에서도 10여 개국에서 생산된 물건 (식품 포함) 을 쓰고 있는 가정이 드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느 면에서 이처럼 이미 세계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의식은 과연 얼마만큼 세계화돼 있을까. '세계화' 란 슬로건을 마치 자신들이 만든 새롭고 독창적인 이념인 양 내세우던 (그 방법과 태도가 얼마나 '비세계적' 이었던가!) 사람들도 있었지만, 세계화는 산업화에 뒤따르는 경제.사회의 자연스런 진행단계일 것이다. 그러함에도 의식과 제도가 산업화 이전 단계에서 머물고 있다면 갈등이 불거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외국인과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자기의 일방적 판단이나 편견을 드러내지 않으려 얼마나 애쓰는지 느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거기에 비해 한국사람들은 'A는 B다' 라는 식의 단언을 잘하며, 자신이 가진 여러 편견들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뚜렷한 합리적 근거도 없는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편견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표현한다.

"중국애들은 모두 더럽다" 는 식이다.

그래서 10억의 인구가 모두 더러운 애가 된다.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한 선배가 미국에 왔다.

그가 얘기할 때 '깜둥이' 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어 등에서 땀이 날 지경이었다. 참다 못해 '흑인' 이라는 말이 듣기 좋다고 한마디 하자 "야, 깜둥이 새끼들이 내 말을 알아듣냐" 고 되묻는다. 감히 말하건대 세계화는 나라.지역.경제력.피부빛 등이 다른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고 존중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자이크에서 파란색이 노란색보다 우월하지 않고 빨간색이 초록색보다 열등하지 않은 것처럼, 색깔들은 상대적 우열관계에 있지 않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색처럼 '같은 위치에서 서로 다를' 뿐이다. 그 서로 다름에 대한 섬세한 배려, 그것이 세계화된 시대의 교양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이 시대에 그 작은 땅, 한국에 있다는 '지역감정' 이나 '배외감정' 이 얼마나 '세계화' 에 반하는 일인가는 다시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이태호 재미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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