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개발원]TV드라마 남성중심주의 '여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IMF시대, 힘없이 어깨가 늘어진 아버지들을 위함인가. 지상파 3사의 드라마속에 남성 중심의 가족관이 강하게 배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한국방송개발원이 3사의 아침드라마.일일극.농촌드라마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성격을 진단한 결과. KBS2 '결혼 7년' , MBC '전원일기' , SBS '서울탱고' 등 현재 방영중인 8편과 최근 막을 내린 KBS1 '모정의 강' 등 모두 9편이 대상이었다. 4일 시작된 KBS1의 아침드라마 '너와 나의 노래' 는 제외됐다.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드라마에서는 ^남성중심주의에 도전하는 여성에게 불행이 찾아오고^순종.인내형 여성에게는 보상이 주어지며^애정 관계에서 선택은 남자의 몫이고^여성의 관심거리는 신변의 문제인 반면 남성은 진지하게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는 식으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도전적 여성이 불행을 맞는 대표적 경우가 '결혼 7년' 의 이향미 (나영희) .성취욕 강한 디자이너인 그에게는 아이가 우울증에 걸리는 등 불행이 찾아온다는 것. 보고서는 "결국 가부장적 질서를 깨뜨린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것을 드라마가 암시한다" 고 지적했다.

정반대의 경우가 '모정의 강' 의 평양댁 (남능미) .궂은 일을 하며 묵묵히 두 아들을 키우고, 아들이 크게 성공함으로써 보상받는다. 이는 같은 드라마의 나순임 (정영숙) 과 크게 대조를 이룬다.

순임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이 자녀를 키우는, '전통적 어머니의 의무' 를 저버린 인물. 자식을 고아원에 맡겼던 그는 백화점 경영인으로 성공하지만 결국 남편에게 이혼당하는 등 고통을 받는다. 이밖에 KBS1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에서 명자 엄마 (전원주) 등이 문제를 일으키면 남성들이 해결하는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것도 남성 우월주의의 반영이라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분석 책임자인 개발원 프로그램연구실 박웅진 연구원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강조되는 현대에서 가정은 부부가 함께 가꾸어야 하는 것" 이라며 "여성의 일방적 희생 위에 남성이 군림하는 식으로 그려지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 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woongj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