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연걸, '리설웨폰4'서 악역 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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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배우들의 이름이 적힌 트레일러와 뷔페식 음식서비스 차량이 잔뜩 주차중인 LA도심의 허름한 공장지대. 중국인 위폐범들의 감방으로 꾸며진 대형창고에서는 백열의 조명아래 파나비전 카메라가 한창 돌아간다.

여기는 올여름 개봉 영화 '리설 웨폰4' 의 막바지 촬영현장. 아내와 사별후 물불가리지 않는 형사 릭 (멜 깁슨) 과 퇴직을 앞두고 떨어지는 가랑잎에도 몸을 사리는 파트너 머터프 (대니 글로브)가 여전히 주인공이지만 1편이 나왔던 것이 87년. 강산은 물론이고 사람도 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1.2.3편에서 더부룩한 장발이 트레이드마크였던 멜 깁슨은 머리를 짧게 깎은 채 촬영장을 오가고, 극중에서도 여걸 형사 로라 (르네 루소) 의 남편이자 한 아기의 아버지가 되는 인생의 변화를 겪는다.

그렇다면 천방지축 액션은 누구 몫? 바로 신예 제트 리 (Jet Li) .우리에겐 이연걸, 중국어권에는 리롄제 (李連杰) 로 불리는 그다. 멜 깁슨의 적수인 중국계 마피아두목역으로 할리우드 데뷔를 준비중인 그가 촬영도중 짬을 냈다.

- 영화속에서 늘 영웅이었던 당신이 악역을 한다니 놀랍다.

"내가 영웅이었던 게 아니라 영웅역할을 했을 뿐이다.

- 이런 얼굴로 악역을 할 수 있을까? (표정을 심각하게 바꾸면서) 할 수 있다.워너 브러더스같은 큰 영화사와 일할 수 있게 된 걸 행운으로 생각한다 (코끝에 살점을 떼어내면 좋은 일이 생길 거란 말을 듣고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고 돌아오자마자 바로 섭외전화가 걸려왔더란다) ."

- 할리우드식 액션과 홍콩식 액션은 많이 다른데.

"처음에 감독인 리처드 도너에게 물어봤다. 할리우드식을 원하는 지, 홍콩식을 원하는 지. '이연걸식 액션' 을 원한다고 답하더라. 내가 바라는 것도 그것이다."

- 제작방식면에서도 많이 다를 텐데.

"홍콩에서 보통 카메라 한두대로 찍다 여기와서는 액션장면에 7, 8대가 한꺼번에 돌아간다.할리우드의 돈과 홍콩의 액션이 결합한다면 성공적일 것이다. 홍콩의 뛰어난 점을 새삼 깨닫기도 한다 (홍콩시절부터 그의 스텝이었던 스턴트 코디네이터도 현재 함께 작업중이다) ."

할리우드는 항상 새 피를 기다리는 수혈대기환자와 같다. "앞으로의 영화에 홍콩배우를 출연시킬 생각이 있냐" 는 물음에 '리설 웨폰' '다이 하드' 등 히트작을 만들어온 제작자 조엘 실버는 간단히 답한다.

"물론이다. 돈만 된다면." 그러나 배우로는 주윤발, 감독으로는 서극의 예에서 보듯 할리우드와 홍콩의 만남이 우리에게 늘 만족스런 것은 아니다. 10여년간 '리설 웨폰' 을 찍어오면서 한가족같이 되어버린 다른 스텝들 틈에서, 아직 영어가 불편한 제트 리가 이미 22편의 영화에 출연한 관록의 배우임을 충분히 증명해 보일 수 있을지.

한편 멜 깁슨도 첸 카이거 감독의 다음 작품에 출연할 뜻을 털어놨다. 이래저래 동과 서는 서로를 원하고 있다.

LA=이후남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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