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통령배 고교야구]하일성 결승 관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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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초등학교 시절 글러브를 낀 이래 숱한 경기를 치렀고 많은 경기를 중계해설했다. 또 야구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 경기도 남보다 많이 봤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동대문구장에서 벌어진 중앙일보 주최 대통령배 고교야구 결승전은 이제까지 본 경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명승부였다.

야구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드라마였고 어린 선수들이 여러 가지 교훈을 남겨준 경기였다. 연장 12회말 경남상고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은 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연장 12회초 경남고에 3점을 내주었을 때 모든 사람들은 경남고의 우승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경남상고 선수들만은 경기를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기적과 같은 역전승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이날 12회 승부를 현재 우리 국민이 처한 국제통화기금 (IMF) 위기 상황에 비유하고 싶다. 이날 경기는 IMF자금을 지원받는 어려운 상황도 우리 국민 모두가 합심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표현하고 싶다.

KBS - TV의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가 끝난 후 다른 야구인들과 끝까지 경기를 지켜보면서 연장 12회초 경남고가 3점을 뽑을 때는 "끝났다" 고 생각했다. 나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얼마 뒤 나도 몰래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을 맞았다. 단 한 사람도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야구해설 19년 동안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고 야구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어떤 영화 카피처럼 '다시는 이런 명승부를 만날 수 없다' 는 두려움이 생긴다.

하일성 〈KBS 야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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