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김대통령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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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표정은 밝지가 않다. 28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던 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 있더라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29일 새 보건복지부장관 제청을 위해 청와대를 찾은 김종필 (金鍾泌) 총리서리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난 극복을 위해 주변의 휴식권고도 물리친 채 온몸을 던져 뛰고 있는데 당정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거나 일을 그르쳐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 같다.

金대통령의 마음을 특히 상하게 한 사람의 하나는 주양자 (朱良子) 전보건복지부장관이다. 朱전장관으로 인해 '국민의 정부' 도덕성에 손상이 갔고, 그의 경질은 결과적으로 金대통령 자신의 첫 '인사실패' 를 인정하는 것이었기에 심기 (心氣)가 불편해졌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金대통령이 침통해 하는 것은 그 때문만이 아니다.

金대통령은 정권의 좀더 원초적·구조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 공동정권의 한계·무리가 자꾸 노정되기 때문이다.

사실 朱전장관은 자민련 몫으로 장관이 됐다. 金대통령은 당초 朱전장관 임명이 내키지 않았으나 자민련측의 천거를 물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공동정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선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전검증 소홀이라는 비난까지도 대통령이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런 경우도 있다. 金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 등에서 장관 몇몇을 질책했다.

업무를 아직껏 제대로 파악 못한데다, 정책비전을 잘 제시하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8일 국무회의에서도 적당히 넘어가려다 혼난 인사가 있다. 그런데 이마저 당리당략의 차원으로 해석, 딴소리를 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

정부산하기관 인사에 있어서도 두 여당의 제몫 다투기는 치열하다. 그 바람에 공공부문 개혁은 거북이 걸음을 걷고, 그런 등등으로 노동계의 불만은 한 켜 두 켜 쌓여가는 형국이다.

두 여당은 이제 이기주의를 버릴 때가 됐다. 또 공직자들은 대통령의 정책의지를 뒷받침해줘야 한다.

金대통령이 홀가분하게 국정에 전념하도록 해주는 것은 결국 우리를 잘 되게 하는 길이다.

이상일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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