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개성공단 접촉 … 북한의 냉철한 판단 기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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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북한의 제의로 오는 11일 이뤄질 남북 간 제2차 개성 접촉이 매우 주목된다. 악화일로의 한반도 상황을 감안할 때 이번 접촉이 개성공단의 장래는 물론 향후 남북관계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번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오리무중이다. 억류 직원 유모씨에 대한 북한의 진전된 입장 표명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으나, 남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일방적으로 통보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우리는 이번 접촉을 계기로 꺼져가는 개성공단의 불꽃을 되살릴 수 있는 방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접근방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성공단은 ‘10·4 선언’과 마찬가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간여한 사안이다. 개성공단 조성에 따른 부대이전에 난감해하던 군부를 설득한 것도 김 위원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결과 개성공단은 남북 협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은 물론 남북 모두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을 주었다. 김 위원장의 ‘잘한 결정’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이 남북 긴장 고조의 대상이 돼서는 곤란한 것 아닌가. 특히 김 위원장 통치의 무오류성을 위해서도 말이다. 설사 남측의 새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긴장을 조성할 필요가 있었다면 다른 방법도 있지 않은가.

북한이 신줏단지 모시듯 하고 있는 ‘강성대국론’의 견지에서 봐도 개성공단 훼방 놓기는 모순이다. 1998년 ‘김정일 시대’의 개막과 함께 천명한 강성대국론은 ‘정치사상적·군사적 위력에 경제적 힘이 뒷받침될 때 명실공히 강성대국의 지위에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 요체다. 피폐한 경제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강성대국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려고 그렇게 애를 써온 것도 이를 위해서가 아니었나. 그럼에도 역주행만 일삼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북한 경제가 회복되려면 ‘개성공단식 개발’밖에 없다는 것은 평양 지도부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합의를 깨고 투자국 국민의 신변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세계 어느 국가가 투자와 경협을 하겠는가. 이렇게 해서 시간을 허비한다면 언제 강성대국이 되겠는가.

북한은 평상심을 찾고 이성적으로 개성공단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최소한 이번 접촉에선 국제사회의 신뢰를 통째로 저버리는 언행만은 삼가야 한다. 무엇보다 억류하고 있는 유씨의 신변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화의 끈을 이어갈 수 있다. 북한이 어떤 대응을 하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잘못됐을 경우 4만여 명에 이르는 북측 근로자의 생계 문제를 포함한 후폭풍은 북한이 감수해야 한다. 남측에서도 ‘정 안 되면 철수할 수밖에 없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점을 북한은 유념해야 한다. 정부도 북한이 취할 모든 경우의 수에 철저히 대비하고 접촉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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