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이제 원화 가치 상승 대비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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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요즘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경제 뉴스가 머리로 올라가는 경우가 뜸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뉴스의 속성상 경제가 머리기사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가 그런 대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움직인다는 뜻일 터여서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경제위기로 나라가 결딴날 듯 떠든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벌써 이렇게 무뎌졌나, 이렇게 무뎌져도 되는 것일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달포 전 영국 런던에서 우리나라의 1분기 경제성장률이 플러스로 반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국 성장률이 3분기 연속 상당 폭의 마이너스로 나온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플러스 반전은 꽤 중요한 뉴스라 생각했는지-대비를 통해 자국의 경제 상황을 비판할 의도도 다분히 있었겠지만-BBC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고, 같은 날 나온 삼성전자의 예상 밖 실적과 함께 해설까지 덧붙여 상당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때 해설의 포인트는 역시 주요 통화에 대한 원화의 대폭적인 약세였다.

지난 1분기 한국은 0.1%라는 미미한 수준이긴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이뤄냈다. BBC의 해설대로 1등 공신은 원화 약세라는 뒷바람이었다. 1∼2%의 가격 경쟁력 우위도 적은 게 아닌데 30∼40%는 엄청난 무기다. 세계적으로 수요가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한국의 수출 기업들은 원화 약세를 무기로 가격경쟁력에서 분명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그것이 세계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대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원화 약세는 대단히 고마운 뒷바람이었지만 바람의 방향은 항상 바뀌게 마련이다. 뒷바람이 있으면 맞바람도 있게 마련이다. 원화 가치가 상당히 회복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 달러당 1200원 중반 수준이다. 장기 추세로 보아 현재 원화는 저평가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책 담당자나 기업인들을 만나 보면 원화 가치 상승에 따른 수출 환경의 악화 운운하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1달러=1000원 미만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경상수지 흑자 추세-교역 규모가 위축되는 상황에서의 흑자라는 모습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게 분명한 상황에서 원화 가치의 재상승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1달러=1000원은 맞바람이 아니라 원화 가치가 제자리를 찾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미리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그동안의 이익은 단지 일시적 행운이었음을, 그로 인한 점유율 확대도 다져진 내부 실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음을, 1달러=900원선, 100엔=800원의 환율 상황은 언제라도 재현될 수 있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미리 준비하는 타이밍, 바로 지금이 그때가 아닌가 싶다.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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