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45> 반도인 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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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 메고 다니던 란도세르(ランドセル)가 일본어도 영어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50년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다. 아직도 그 원적이 불분명하지만 네덜란드 말의 ‘란셀(Ransel)’이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그것도 원래는 통학용 책가방이 아니라 일본의 에도 말경 서구의 군사제도와 장비를 들여올 때의 군인 배낭이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충격을 받은 것은 자랑스럽게 메고 다녔던 그 란도세르가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한 바로 그 이등박문(伊藤博文)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다.

대정천황(大正天皇)이 황태자 시절 학습원 초등과에 입학했을 때 이등박문이 축하선물로 바친 게 그 란도세르였다는 것이다. 그 뒤 학습원에서는 학생들의 마차· 인력거의 통학을 금지하면서 정식으로 통학용 가방이 된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것이 일반에게 보급되어 21세기의 오늘날에도 아이들은 그와 똑같은 란도세르를 메고 학교에 다닌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초 일본의 월간 종합지 ‘중앙공론’에 ‘보자기 문화론’을 연재하면서였다. 그리고 그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이 보자기가 일본 고유의 생활문화라 믿고 있었으며 영문 표기 자체를 ‘래핑 클로즈’가 아닌 일본어에서 딴 ‘HUROSHIKI’로 세계 브랜드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누가 먼저 만들었느냐를 놓고 미국과 프랑스가 실랑이를 벌이는 것처럼 보자기의 원조 다툼을 벌이자는 것은 아니었다. 매화가 ‘재패니즈 플럼(japanese plum)’, 은행이 ‘긴고(Ginko)’, 그리고 단정학이 ‘그루스 자포넨시스(Grus japonensis)’로 알려진 것처럼 보자기마저 일본의 ‘후로시키’로 알려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서였다. 아니 그보다도 네모난 천만 있으면 보자기가 되는 것인데도 그것을 일본 고유의 것이라고 믿고 있는지 007 가방밖에 모르는 서양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통해 보자기 문화의 의미를 알고 싶어서였다.

어렸을 적에 나를 매혹시킨 란도세르, 그러나 실제 메고 다녀 보면 거추장스럽고 융통성 없는 딱딱한 가죽 상자에 지나지 않은 란도세르 속에 서구문명의 비밀이 숨어 있을는지 모른다.

연재 테마가 ‘보자기문화론’이라고 하자 편집부장은 “아니 한국에도 보자기가 있습니까?”라고 어이없는 질문을 한다. “물론이지요. 네모난 천이면 다 보자기지 그것도 없는 나라가 있나요. 다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의 소프트웨어에서 문화가 생기는 것이지요.” “하긴 그렇군요.” 그는 한참을 볼펜을 돌리고 있더니 “좋아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라 ! 그렇다 쳐도 일본의 보자기가 한국보다….” 나는 말을 가로채고 말했다. “일본에도 야키니쿠(불고기)집 많잖아요. 거기에서 쌈 싸먹은 적 없어요. 한국 사람들은 물건만 아니고 음식도 보자기처럼 싸서 먹는답니다.” 차마 ‘야키니쿠’까지 일본 것이라고 우길 용기가 없었던지 그는 피식 웃으면서 “그건 그렇다 쳐도 보자기 하나 가지고 어떻게 일 년치를 연재하실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서양의 트렁크와 비교하는 것이지요. 태초의 인간들이 무얼 보관하거나 옮길 때 두 가지 방법밖에는 없었겠죠. 나뭇잎으로 싸거나 나뭇등걸 안에 넣거나. 그렇지요. 싸는 쪽이 아시아형 보자기 문화고, 나뭇등걸을 파고 넣는 것이 서양형 가방문화형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제야 편집부장의 얼굴이 환해지더니 “트렁크와 보자기를 비교한다?”라고 혼잣말처럼 말하면서 또 볼펜을 돌리려 하기에 나는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영어 사전 열어 봐요. 트렁크는 분명히 나뭇등걸로 나와 있을 겁니다. 수트케이스란 말이 거기에서 생긴 것이지요. 롤랑 바르트가 뭐라 했는지 아세요? 노아의 방주를 바다 위에 뜬 커다란 트렁크라고 했지요 . 하하. 그렇지, 동물들을 원형별로 분류해서 칸막이에 집어넣은 거대한 상자. 그것이 서양 사람들이 만들어낸 세계 시스템이라는 것이지요. 그 근대 산업주의에 일본식 군국주의를 가미해서 만든 것이 란도세르 문화고요. 양복을 보세요. 그게 어디 옷입니까. 갑옷이지. 단추와 허리춤은 한 치의 에누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한국의 바지와 치마, 그리고 옷고름을 보세요. 몸을 갑옷에 넣는 것이 아니라 보자기처럼 쌉니다. 바지 끈이나 옷고름으로 얼마든지 풀었다 조였다 하지요. 서양에서는 도시도 미리 상자처럼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들어가지만 한국이나 일본은 사람이 살면서 길이 생기고 블록이 만들어지지요.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가 아니라 ‘넣는 문화’와 ‘싸는 문화’를 비교해 그 특성을 찾아보자는 것이지요.”

연재는 그렇게 시작돼 책으로 출간되었다. 21세기가 되자 아스만 부부가 쓴 『문화의 기억』이라는 책이 화제를 낳았는데 내 말처럼 서구문명을 ‘상자’ 속에 든 집단기억으로 풀어낸 내용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국립민족학박물관에서는 세계 보자기 대전시회가 열렸다. 한국의 보자기는 그 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세계는 서서히 가방에서 보자기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다음 회는 ‘짚신과 고무신을 신고 싸울 수 있을까’입니다. joins.com/leeo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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