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 경제실정]실정수사 '준비된 각본' 있나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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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문민정부 경제실정에 대한 검찰수사가 확대되면서 정계와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양쪽 모두 '보이지 않는 프로그램' 이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구 (舊) 민주계 실세 4~5명이 구체적으로 거명되는 상황을 당혹감 속에 주시하고 있다. "정치권 사정 (司正)" 이라면 직전 집권세력인 한나라당이 대상일 것이라는 위기감이다.

재계는 더하다.대기업들은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사정당국의 내사가 자신들의 목을 죄어온다는 본능적 두려움에 떨고 있다.'폭풍을 예고하는 먹구름' 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물론 청와대.국민회의 등 여권 핵심부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외환위기 주범인 종금사비리 조사는 당연할 뿐만 아니라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약속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야당파괴 공작" 주장엔 "도둑이 제발 저린 격" 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주목되는 사실은 "진상이 철저히 규명되면 새 정부 개혁에 속도가 붙게 될 것" 이라는 여권의 '자신있는 예고' 다.정.재계를 긴장시키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검찰수사와 개혁이 어떻게 맞물릴지, 파장은 어느 정도일지 가늠키 어렵기 때문이다.그래서 여러 얘기들이 오가고 있다.

여권 주변에선 총리인준→6.4선거→정계개편의 정치일정을 염두에 둔 전면적 야권 압박용으로 분석하고 있다. 경제실정 책임추궁이 결국 한나라당 잘못 들춰내기로 이어지면 상당수 의원들이 사법처리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은 뻔한 이치다. 이 경우 'JP총리' 임명동의로 발목을 붙들고 있는 한나라당측과 '정치적 협상' 의 여지가 생기고 선거에도 좋은 공격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또 협상이 무산되더라도 여권이 진행중인 소규모 정계개편에도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한나라당내 민주계 탈당저지 인사로 지목된 구 실세가 종금사비리 인사로 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잘만 처리하면 탈당저지 인사를 차제에 격리시킬 수 있다는 계산도 깔고 있다.

동시에 금융.재벌개혁 촉진제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여권 스스로 "비리가 낱낱이 공개되면 금융권이나 재벌도 할말이 없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새 정부의 개혁을 촉진시키는 효과가 나타날 것" 이란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다.

검찰은 개인휴대통신 (PCS) 사업자 선정시 벌인 로비혐의 외에도 LG에 대해선 종금사 인허가 과정까지 내사중이며 부인키 어려운 혐의들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거물들에 대한 출국금지와 압수수색의 의미를 재계는 잘 알고 있을 것" 이라는 설명이다.그래서 경제실정 수사가 개혁에 저항하는 재벌들을 개혁에 나서도록 하는 압박카드라는 얘기다.

문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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