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계모설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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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동.서양의 수많은 '계모설화 (繼母說話)' 들 가운데는 간혹 착한 계모를 그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악한 계모를 등장시킨다.착한 계모의 이야기도 처음에는 전실자식을 미워하고 학대하는 인물로 설정했다가 의붓자식의 착한 마음씨에 감동해 개과천선한다는 내용으로 전개되는 게 보통이니 '계모 = 악 (惡)' 이라는 등식은 오랜 세월 동안 보편화돼 온 셈이다.

동.서양의 계모설화가 보여주는 차이점은 동양에서는 '권선징악형' 이 주류인 데 비해 서양에서는 '해피엔딩형' 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서양의 '신데렐라' 와 우리나라의 '콩쥐팥쥐' 나 '장화홍련전' 이 대표적이라 할 만하다.

한데 양쪽의 계모설화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하나 있다.

계모들은 한결같이 추악하고 흉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반면 그들에게 학대받는 의붓자식들은 마치 천상의 선녀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가령 '장화홍련전' 에서 계모 허 (許) 씨는 이렇게 묘사된다.

"두 볼은 한 자가 넘고, 눈은 퉁방울 같고, 코는 질병 같고, 입은 메기 같고, 머리털은 돼지털 같고, 키는 장승만 하고…. " 이것은 선악 (善惡) 을 미추 (美醜) 의 개념으로 파악하려는 인간 본래의 속성 탓이다.착하면 아름답고 악하면 추하다는 인식이 오랫동안 인간의 마음 속을 지배해 온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사악함은 외모와는 관계가 없다.

어떤 코미디언이 "못생긴 것도 죄가 됩니까" 라고 항변했지만 못생긴 것은 결코 악이 아니다.그러니 사악한 계모를 추하게 묘사하는 것이 악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효과는 있을지언정 모든 못생긴 계모를 악녀로 만들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혼이나 사별 (死別) 등으로 재혼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요즘에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의부 (義父) 혹은 계모와 함께 살도록 돼 있다.만약 '계모 = 악' 이라는 등식이 지금도 통한다면 계모설화에 나타나는 비극은 끊임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그런 비극적 사태는 우리의 결혼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게 할는지도 모른다.하지만 계모 혹은 의부와 자식간의 갈등은 제도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사악함에서 비롯한다.

전처의 딸을 때려 숨지게 하고, 아들을 학대해 온 30대 부부의 경우도 그렇다.이따금씩 발생하는 이런 사건들이 지금 우리 사회의 인과 (因果) 관계를 새삼 곱씹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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