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MVP허재, 몸 만신창이불구 챔프전 맹활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신은 공평하다.누구에게도 '완벽' 을 허용하지 않는다.역대 최고의 올라운드 플레이어 신선우는 부상의 짐을 지워 한창 나이 (27)에 은퇴시켰고 '슛도사' 이충희에게는 큰 키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희대의 테크니션으로 꼽히는 '농구천재' 허재 (33.기아)에겐 지성을 허락하지 않았다.허는 지나친 음주와 수준이하의 매너로 곧잘 '악동' 으로 불렸다.그러나 허재는 외쳤다.

"운명아, 비켜라, 내가 간다!" 그리고 운명에 도전했다.부러진 오른손.뒤틀린 허리.근육이 늘어난 왼쪽 다리.찢어진 눈자위. 코트에 나선 허재는 흡사 '지옥의 전사' 와 같았다.허재의 몸은 엉망이었지만 정신은 그의 농구생애를 통틀어 가장 맑게 깨어 있었다.

허의 초인적인 투혼은 챔피언 결정전을 감동의 드라마로 채색했다.우승을 놓친 허재에게 신은 최우수선수 (MVP) 의 왕관을 씌워 위로했다.축하 꽃다발에 파묻힌 채 챔피언전의 영웅은 코트를 떠났다.

뒤에서 우승팀 현대 선수들이 박수를 보냈다.그러나 그들은 핼쑥해진 두볼을 타고 쉼없이 흐르는 허재의 눈물을 보지는 못했다.허재는 패배라는 '죽음' 을 통해 불사조처럼 새로이 태어났으며 그가 보여준 감동의 모노드라마는 영원히 팬들의 기억 속에 남으리라는 점이다.

허진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