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안기부]퇴직 앞둔 40대 직원 "따가운 시선에 더 괴롭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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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내정치 관련 정보수집을 담당했던 단장 A씨 (3급) . 이 분야의 베테랑으로 후배들에게 잘 알려진 그는 이번 인사에서 아무런 보직도 받지 못했다.조직개편으로 부서가 대폭 통폐합되면서 자리가 없어졌고, 별수 없이 옷벗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지방대 출신으로 서슬이 퍼렇던 70년대말 중앙정보부 시절 정보업무에 입문, 지부.본청을 오가며 일한 지 20년이 넘었다.'대통령 시해 (弑害) 집단' 으로 몰렸던 79년 10.26 당시에도 시련을 겪었지만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누가 뭐래도 음지에서 일하지만 양지를 지향하는 보람으로 산다는 자부심이 컸다.그는 요즘 오십 가까운 나이에 새로운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안기부에 근무했다는 전력은 국제통화기금 (IMF) 취업난을 돌파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다.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다. 개혁의 폭풍이 워낙 거세다보니 마땅히 '줄' 을 댈 만한 곳도 없었다.

"이 길말고는 달리 생각해본 일이 없어요. 남들처럼 모아놓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 아들과 딸이 모두 대학에 다니고 있지만 재산이라곤 분당의 25평형 아파트뿐이다.그러나 그가 정말 마음 아픈 것은 안기부에 몸담았던 사람들 대부분이 북풍 (北風) 이니 정치공작의 주모자로 몰려버린 상황이다.

구조개편의 와중에 방출되는 안기부맨도 정치공작을 주도한 세력으로 함께 낙인찍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때문에 그의 걱정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저도 정보기관 요원이기 이전에 한사람의 가장이자 아버지입니다.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도 실은 걱정입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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