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정책자금도 '꺾기'…담보 설정요구 등 대출 어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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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몇달 고생 끝에 최근 인천시로부터 경영안정자금 2억원을 배정받은 기계부품업체 A사.신용보증기금의 보증서 등을 준비해 대출창구인 은행에 갔다가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그동안 거래관계가 없으므로 1억원짜리 적금을 안들면 대출해 줄 수 없다' 는 것이었다.A사 대표는 "한 푼이 급해 적금을 들긴 했지만 정부 정책자금까지 꺾기를 하면 중소기업은 어쩌란 말이냐" 며 불만을 토로했다.

경남 창원의 K기계도 구조개선자금 5억5천만원을 배정받았으나 은행에서는 담보부족을 이유로 절반밖에 대출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이처럼 정부.지자체가 우수 중소기업에 배정한 정책자금에 대해서까지 일선 금융기관들이 구속성예금 (꺾기) 을 강요하는가 하면, 전액 담보를 요구해 중소업체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중소기업 구조개선자금.기술개발자금 등 중소기업에 대한 올해 정책자금은 5조8천53억원으로 지난해보다 57.3% 늘었고, 앞으로 벤처창업기금 9천억원 등이 확정될 경우 연내에 7조원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하지만 막상 중소기업 입장에서 이들 정책자금은 그림의 떡이다.

자동차부품업체인 H사 관계자는 "담보 제공능력이 충분하면 뭣하려고 절차 복잡한 정부지원금을 신청하겠느냐" 고 반문했다.이 관계자는 "현재 은행 일반자금 대출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인데 정책자금까지 담보를 요구하면 연쇄도산이 불가피하다" 면서 "정책자금 지원대상은 상대적으로 건전한 기업이므로 담보를 요구하지 않는 등의 개선책이 따라야 지원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은행 관계자는 "아무리 정책자금이라도 부실에 대한 책임은 은행과 실무책임자가 져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특히 최근 이런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대출을 확대하고 합리적 기준에 따른 대출은 창구직원에 대해 부실 책임을 묻지 않는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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