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저기 사람이 가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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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제 다 끝났는가. 아니다. 역사의 시간은 멈추는 법이 없다. 그는 떠났지만 우리는 아직 그를 다 보내지 않았다고 느낀다. 일찍이 붓다가 말했듯이, 올라간 것은 떨어지고 쌓은 것은 무너지고 끝난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이 또 다른 바람직한 변혁의 새벽을 불러올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감히 믿고 싶다.

그가 부엉이 바위에서 훌쩍 날아오른 다음 날, 나는 어떤 신문에 쓴 글에서 격정적인 마음을 채 가라앉히지 못하고 죽은 그에게 타박을 했다. 당신의 죽음에 동의할 수 없다고 나는 썼다. 당신까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야만적인 반문명의 잔인성에 굴복해 ‘막 가자는 겁니까’라고 나는 썼다. 나는 그때 혼자 죽음을 결정한 그에게 화가 나 있었다. 대통령이 되었을 때처럼,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투표’로 결정하자고 말하고 싶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다. 마지막 그가 떠나는 행렬을 보면서 난 죽은 그에게 이퉁을 부린 것이 그에게 계속 더 많은 짐을 지우기 위한 이기주의적 발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난하고 소외받고 그래서 억울한, ‘우리’와 ‘나’의 짐까지 살아서 모두어 짊어지라고, 그에게 냅다 볼멘소리를 했던 것이다. 소심한 나에겐 나의 사회적인 짐까지 대신 짊어지고 갈 사람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감성과 이성의 편차가 심한 민족이다. 심장엔 노무현의 ‘지향’을 두고 머리로는 이명박의 실용적인 ‘보따리’를 넘보면서 양다리를 걸친 것이 누구인가. 자신의 가슴이 하는 말을 자신의 손이 알아듣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그를 버린 것이 누구인가. 그는 ‘미워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라’고 했지만 고백하건대, 우리는 남아서 미워하지 않을 수 없고 원망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미워하는 것으로 양다리를 걸쳤던 나의 부끄러움을 감추고, 원망하는 것으로 나의 명목적인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를 지키지 못한 것은 용감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감성과 이성을 각각 딴 주머니에 넣어두고 시치미를 뚝 떼고 마는 우리의 부정직한 이중성, 혹은 과실을 핑계 댄 비겁한 삶의 전략에 그 연유가 있다. 혹시 나는, 우리는 우리 짐을 대신 짊어지게 할 ‘짐꾼’을 잃어 지금 울고 있지는 않는가.

이제 우리는 그를 보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했을 짐을 그의 등으로부터 우리의 등으로 옮겨 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가 주문한 ‘원망’ 없는 평화는 경계에 따른 증오심이 맹목적인 상태로까지 깊어졌으니 말처럼 쉽지 않다. 먼저 통합해야 할 것은 사랑하면서도 결과적으로 한때 그를 버렸던 내 심장과 내 머리, 내 사랑과 내 이득 사이의 통합이다. 그의 죽음에 얻어맞아 불끈 상승한 감수성의 눈금을 따라 단지 소리치고 울면서, 어부지리로 얻을 화해와 통합은 없다.

물론 화해와 통합이란 본질적으로 더 ‘팔뚝’ 굵은 자들, 스스로 주류라고 믿는 자들이 진실로 자책하며 손 내밀어 주어야 시작된다는 것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한번 행랑방에 살았던 자는 여원히 ‘머슴’이 되어 살아야 직성이 풀린다는 식으로 내모는 자들에게 변방의 비주류들이 먼저 내미는 악수란 화해가 아니라 굴종이다. 어떤 이들은 ‘잃어버린 십 년’이라고 말해 왔지만, 바로 그 어떤 이들이 억하심정으로 우리의 멀쩡한 ‘십 년’을 송두리째 압수, 폐기처분하고, 계속해서 역사의 시간을 되돌리려고 한다면 곤란하다. 한때 권력을 스스로 국민에게 되돌려 주려 했던 대통령이었으나, 다만 고향에 돌아가 꿈꾸며 살고 싶어 했던 그가 왜, 어떻게 죽음으로 나아갔는지, 그 어떤 이들 스스로 먼저 아프게 받아들여 문제를 풀어 가려는 진지하고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저기 사람이 가고 있네!’

그가 죽기 전 정말 그 말을 했었는지 모르지만, 해답은 여기 있다. 저기, 우리 중의 누군가 간다. 내달리는 큰 차로 흙탕물을 튀기지도 말 일이며 부주의하게 뭘 집어 던져 앞길을 가로막지도 말 일이다. 오는 자는 길을 내주고 가는 자는 웅숭깊게 배웅하라. 사람이 곧 자연이고 하늘이다. 그가 사랑받는 연유도 알고 보면 그가 역대 지도자 중 그 누구보다 ‘사람’다운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보지 못하면 화해도 통합도 다 공염불이 될 뿐이다.

박범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