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장애인 가요제전' 자금없어 개최 불투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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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택진 (35) 씨는 2월말 KBS에 전화를 걸었다.

3월 열릴 것으로 생각했던 '장애인 가요제전' 에 수화통역 자원봉사활동을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씨는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올해 제전이 열리지 못하게 됐다" 는 것. IMF의 여파다.96년부터 매년 3억 가까운 행사 비용을 대오던 기업이 올해는 사정상 도저히 행사를 벌일 수 없다고 KBS에 알려왔단다."KBS도 어려운 상황이라 KBS 단독 주최도 힘들다더군요. 다른 기업도 알아보고 해서 가을까지는 열도록 노력하겠다지만 성사여부는 불투명합니다.

" 가요제 문의를 한 것은 정씨만이 아니다.KBS 관계자도 "올해 출연하겠다는 장애인들의 전화가 상당히 쏟아졌다" 고 말하는 정도다.

그 자신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인 정씨는 "대회를 통해 TV에 비친 장애인들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에 장애인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며 안타까워했다. 장씨는 1회 때 장려상을 받았다.

하지만 대상을 받은 사람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는 윤복희의 '여러분' 을 부르며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노랫말을 수화로 표현하고 있었다.

청각장애인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였다.

수화를 배워 봉사활동을 펼치던 회사원 시절, 정씨는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지금은 한국청각장애인협회 중앙회에서 일한다.

이 같은 사연도 있지만 '장애인 가요제전' 에 대한 그의 애착이 남다른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지난해 2월말 1회 대회를 연출했던 KBS 전진국PD로부터 "청각장애인이 예선에 왔는데 수화 통역을 해달라" 고 연락이 왔다.

이틀동안 수화 통역을 한 그에게 더 큰 일이 맡겨졌다.개막 합창을 돕는 일. 개막 당일 막이 오르고, KBS 합창단.선명회.자원봉사자들이 어우러져 '사랑이 필요한 거죠' 를 불렀다.

그들의 손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씨가 하나하나 정성껏 가르친 수화였다.

"그 모습을 보고, 노래를 들으니 1회 대회가 생각나더군요. " 정씨는 이런 이야기를 사뭇 밝은 어조로 늘어놓았다.그러나 그 다음을 이야기할 때 그의 목소리는 끊어질 듯 가느다랗게 이어졌다.

"장애인들이 얼마나 바라던 행사인데…, 이게 끊어지면, 사라지면 안되는데…. "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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