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북한정책, 규제완화 의미와 전망]대북투자 기업에 일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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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7일 발표된 정부의 남북경협 활성화방안과 이산가족 상봉 추진계획은 새 정부의 전향적 대북 (對北) 정책을 다시한번 분명히 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새 정부 1백대 과제와 대북정책 기조 (26일 확정) 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추진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을 화해.협력의 장 (場) 으로 불러내기 위한 실천조치로서 과거 정권때와는 전혀 다른 의지와 강도로 추진될 것임을 예고한다.

◇ 대북투자 활성화 = 투자규모 확대와 기업 자율성 제고에 초점을 맞췄다.

현재 5백만달러로 묶여 있는 투자규모를 전면 철폐했다.

전적으로 기업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결정이다.

다만 민감한 투자사안의 경우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경제부처와 협의를 거치게 된다.

북한 현지의 위탁임가공 사업을 위해 국내설비를 반출할때도 1백만달러의 제한이 있었다. 이것도 적정한 선에서 확대조정된다. 이를 통해 15만~20만달러의 소규모 투자에 머무르던 사업이 일정 규모 이상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대북교역 실무자들의 얘기다.

투자활성화 조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투자품목의 규제방식이 바뀐 것. 지금까지는 승인품목 테두리에서 투자가 허용됐지만 이제부터는 일부 금지품목을 제외하곤 모두 허용된다.

군사무기.유류 (油類) 같은 전략물자를 빼놓고는 대부분 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방북 허용은 상징적 효과가 클 것이란 관측이다.

북측은 내심 대기업 오너가 현지를 방문, 책임있는 투자약속을 해주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정부는 이를 정치적 문제와 연관시켜 사실상 규제했다.

총수의 방북 허용은 사업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북측 태도를 부드럽게 하는 효과를 거둘 것이란 기대다.

이미 북한의 초청장을 받은 정주영 (鄭周永) 현대그룹명예회장 등이 조만간 방북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이산가족 문제 = 새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최우선 과제로 시행하겠다고 누차 다짐한 사안.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북한 이산가족안내소에 우리 실향민들의 신청서를 보내겠다는 부분이다.

정부가 신뢰성있는 민간단체를 통해 북한가족들의 소재와 생사확인을 요청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지난 1일부터 사회안전부 (경찰)에 주소안내소를 설치하고 주민과 해외동포를 대상으로 신청을 받고 있다.

정부는 또한 고령 이산가족의 상봉지원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65세 이상 실향민은 초청장을 소지한 경우 방북승인이 신고제로 전환된다.

60세 이상 영세민 이산가족이 해외에서 상봉을 희망할 경우 1인당 45만원 가량의 지원금도 주어진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이번 추가경정예산심의에서 당초 지원금 예산 4천5백만원을 1억2천3백만원으로 대폭 늘렸다.

◇ 문제점 = 무엇보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나가고 있다는 것.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특사교환 제의에 북한이 일언반구도 없는 상황에서 쉴새없이 새 대북조치가 쏟아지는데 대한 우려다.

강인덕 (康仁德) 통일부장관이 27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강연에서 "새 정부 통일정책중 단 한가지라도 바늘구멍만한 해결점이 나왔으면…" 이라고 언급한 점은 되짚어볼 대목이다.

새 정부들어 열린 4자회담이나 적십자 대표접촉이 아무 성과가 없는 게 현실이다.

북한이란 어려운 상대와의 '빅딜' 임을 명심하라는 북한 전문가들의 지적인데 일각에선 북풍의 파장을 덮기 위해 정부가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한다. 아직 부처간 구체적 협의.조율없이 시안 (試案) 상태로 공개돼버린 점도 이런 점을 더하는 부분이다.

새 정부의 첫 대북 주요조치 발표를 청와대가 주도, '대북정책은 통일부를 중심으로' 라는 金대통령의 공언이 무색해진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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