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박사의 IMF 건강학]4.넉넉하고 푸근한 만년을 준비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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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우리 앞에 놓인 시련의 고비도 길지만 우리가 가야 할 인생도 길다.

오늘의 중년은 인생 90을 살아야 한다.

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그렇게 대비해야 한다.

공원 벤치에 앉은 초라한 노인이어선 안된다.

무료 급식에 줄을 서야 하는 노인이어서도 안된다.

건강하고 품위있는, 화려한 만년을 준비해야 한다.

고향마을 앞 정자 나무처럼 풍성한 만년이 돼야 한다.

여름이면 그 그늘에 앉아 사람들이 쉬어가고 아이들은 나무에 올라 재잘거리는, 그렇게 넉넉하고 푸근한 고향같은 만년을 준비해야 한다.

당장이 급한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바로 그래서 하는 소리다.

아무리 급해도 불로 (不老) 망상에 걸려선 안된다.

누구나 늙는다.

그리고 그날은 언젠가 찾아온다.

노후는 젊을 때 준비해야 한다.

젊을 때 고생은 약이 된다고도 하지만 늙어서 고생은 감당할 여력이 없다.

진짜 복은 노복 (老福) 이니라. 노후 준비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선진 복지국가처럼 나라가 책임을 질 수도 있다.

제발 그렇게 되어야겠지만 우리 형편이 만만치 않다.

노후 책임은 각자 몫이다.

아이들의 효를 믿어볼 수도 있다.

따로 산다고들 큰소리치지만 잠재의식 속엔 은근히 믿고 있다.

세계에 유례없는 아이에 대한 과잉 투자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착각이다.

아이에 대한 투자가 노후 적금일 순 없다.

"내가 저 놈을 어떻게 키웠는데…. " 이 소리만은 말아야 한다.

요즈음 부모들의 과잉 투자를 보노라면 언젠가 이 서러운 타령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이건 자식 망치고 내 자신을 한없이 가난하고 치사스럽게 만든다.

진정 자식을 사랑하거든 노후에도 혼자 자립할 수 있는 노인이 되어 걱정을 주지 말아야 한다.

아이에 대한 투자는 적절해야 한다.

그게 아이를 올바로 기르는 일이다.

자립심은 물론이고 제 손으로 이루어 사는 성취의 기쁨을 누리게 하는 일이다.

대신 자신의 만년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

어려울수록 더욱 그래야 한다.

당장이 어렵다고, 들었던 노후적금을 해약하다니! 고비를 쉽게 넘길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멀리 저 앞에 놓인 내 인생 90을 생각해야 한다.

이시형〈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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