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세계 물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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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과학과 종교는 어쩔 수 없는 갈등 관계에 놓여 있지만 원시신앙과 현대과학간에는 일치되는 부분이 하나 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은 물이라는 점이다.

물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이 뚜렷한 형상을 지니고 나타나기 이전의 무형의 상태를 상징한다는 것이 고대인들의 한결같은 믿음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방대한 우주에서부터 하찮은 미물 (微物)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에서 창조됐다고 믿은 것이다.

40억년 쯤전 원시 지구의 바다 속에서 동식물 등 생명이 싹트게 됐다는 사실을 인간이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은 현대사회에 이르러서였다.

대기중의 수소원자를 많이 가진 단순한 분자 (分子)가 번개나 태양의 자외선과 부딪치면서 분해되기 시작했고, 화학반응을 일으킨 그 유기물이 바닷물에 녹으면서 생명을 창조하는 세포 (細胞)가 됐다는 것이다.

고대인들의 그같은 믿음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종교들도 물을 신성시해 왔다.

바다나 강 또는 호수에 대해 특별한 영적 (靈的) 가치를 부여했으며, 물은 인간의 목숨을 지탱케 하는 자연의 보물이요, 부와 풍요의 원천이라 믿었다.

물을 더럽히는 행위를 신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한 것도 그 까닭이다.

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과학은 지구상의 물을 더럽히는데 늘 앞장서 왔다.

불과 지난 한세기 동안 과학의 발달과 물의 오염은 줄곧 정비례로 치달았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을 탄생시킨 물은 오늘날에 이르러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흉기' 의 모습으로 둔갑한 것이다.

제3세계의 질병과 영아사망 중 절대적인 비율이 병원균 투성이의 물 때문임이 이미 확인됐으며, 불결한 물로 인해 죽는 사람이 하루 평균 3만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사람은 단 하루도 물 없이는 살 수 없지만 세상 천지에 흔한게 물이니 물의 중요성을 깨달을 리 없다.

유엔은 수시로 '21세기에는 세계인구의 5분의1이 식수난을 겪을 것이며, 절반 이상이 제대로 위생처리되지 않은 물을 마시게 될 것' 이라고 경고함에도 '쇠귀에 경 읽기' 다.

유엔이 수자원보호를 위해 정한 '세계 물의 날' (3월22일) 이 올해로 6회째를 맞는다.

의례적인 행사로만 지나칠 일이 아니라 우리 삶에 있어서 물의 존재란 무엇인지를 곰곰 생각해보는 날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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