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때처럼 … 북한 조문단 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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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북한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하루 만인 24일 서거 소식을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보도에 의하면 전 남조선 대통령 노무현이 5월 23일 오전에 사망했다고 한다”며 “내외신들은 그의 사망 동기를 검찰의 압박 수사에 의한 심리적 부담과 연관시켜 보도하고 있다”고 단 두 문장으로 짧게 전했다. 투신과 같은 서거 경위는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북한이 서거 소식을 전함에 따라 후속 조치로 조문단을 보낼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이 조문단을 보낸다면 경색된 남북 관계에서 반전의 계기로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01년 3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타계 때 조문단을 보낸 전례가 있다. 당시 송호경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문단 4명이 북한 고려항공편으로 와 서울 청운동 빈소에서 조문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전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빈소에는 조문단이 북에서 들고 온 조화도 배치됐다. 김 위원장은 금강산 관광을 앞두고 정 명예회장을 수차례 면담한 바 있다.

국내는 아니었지만 2006년 5월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별세 당시 장례식장이던 제네바 노트르담 성당에서 이철 북한 대표부 대사가 조문하기도 했다. 조전을 전달한 사례는 꽤 있다.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2003년 8월)과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2005년 5월) 별세 때 북한은 아태평화위 명의로 조전을 보냈다. 1994년 1월 문익환 목사 사망 때는 김일성 주석 명의의 조전을 유가족에게 발송하기도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전례로만 보면 조문단을 파견하는 게 정상적이지만 현재 얼어붙은 남북 관계가 변수”라고 지적했다. 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10·4 선언에 함께 서명했던 만큼 북한으로선 조문단 파견의 명분은 갖췄다. 하지만 정주영 명예회장 조문단이 내려왔던 2001년(첫 남북 정상회담 다음 해) 당시의 화해 기류와 지금의 남북 관계 분위기와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조문단을 보내 ‘통 큰 예의’를 과시할 가능성과 함께 조문단 대신 조의 표명이나 조전 발송으로 수위를 조절할 가능성을 동시에 거론하고 있다. 조문단 파견은 북한으로선 향후 남측 인사의 방북 때 고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기념궁전 참배를 요구하는 명분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반면 북한은 조전만 보낸 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10·4 선언 불이행을 연결시켜 정부를 비판하는 강공 드라이브를 계속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북한이 조문 의사를 밝혀 오면 그때 검토할 일이지만 유족 측의 의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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