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디자인 촌티 벗기니 수출 불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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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상품은 기능만 좋다고 팔리지는 않더군요. 결국은 디자인이 성패를 좌우합니다."

지난 94년 독일 뉘른베르크 발명품 대회에서 유아용 멜로디 변기로 금상을 받고 창업에 뛰어들었던 발명가 채인기 (蔡仁基.44) 씨는 창업 당시 외국 바이어들의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판매에선 완전 실패했다.

디자인 탓이었다.

蔡씨는 방향을 돌려 3년동안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에서 디자인 지도를 받은 끝에 지난해 새 디자인의 변기를 내놓았다.

그러자 미국과 프랑스 유아용품 바이어 2개사가 시제품만 보고 1천만달러어치를 주문해왔다.

참신한 디자인으로 IMF파고를 넘은 중소기업들은 "디자인을 바꾸면 수출 길이 보인다" 고 입을 모은다.

속눈썹 성형기를 만드는 은성 디벨럽먼트사 역시 디자인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했다.

이 회사는 원래 수동식 플라스틱 속눈썹 집게를 4~5개당 1달러에 수출했으나 값싼 중국제품에 밀려 고전하게 됐다.

은성은 이에 따라 열선으로 눈썹을 한번 말아올리면 하루종일 모양이 유지된다는 점에 착안해 지난해 새 제품을 개발했다.

기존 집게식과 달리 고급 립스틱 모양으로 디자인하고 수출가도 개당 5달러로 높여 책정했다.

그런데도 바이어들의 반응이 좋아 지난해 1천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92년 창업이래 4년동안 벌어들인 돈 (4백만달러) 의 2.5배를 한번에 쥔 것이다.

올해에는 이미 2천만달러어치의 수출주문을 받아놓은 상태다.

플라스틱 주방용품 회사인 에프씨산업은 지난해 6월 튤립을 주제로 연한 분홍색의 비누케이스.바가지 등 욕실용품 시리즈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이 제품만으로 16억원을 벌었다.

또 현재 80여명의 바이어와 수출 상담중이다.

볼펜 끝에 전구를 달아 밤에 불을 켜지 않고도 쓸 수 있도록 한 '라이트펜' 으로 지난해 4백만달러어치를 수출한 세아실업도 볼펜 디자인을 산업디자인 전문가에게 맡겨 재미를 톡톡히 본 케이스. 세아실업은 한걸음 더 나아가 최근 이 볼펜을 조립문구로 만들면서 포장디자인까지 산업디자인 전공교수에게 의뢰했다.

박스만 봐도 이 볼펜이 재미있는 상품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에서다.

이 회사 김동환 (金洞煥.42) 사장은 "중소기업일수록 제품뿐 아니라 포장디자인에 아낌없이 투자해야 까다로운 바이어의 눈길을 잡을 수 있다" 며 '디자인 마인드' 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체 디자인 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은 산업자원부 산하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에 디자인을 의뢰할 수 있다.

특히 진흥원은 올해부터 중소기업 디자인 지도를 강화해 디자인은 물론 특허.법률.마케팅.유통까지 일괄지원하는 '디자인경영상담실 (02 - 708 - 2075)' 을 운영중이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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