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스타일리스트]첼로 전공하다 U턴한 요리연구가 김지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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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앞치마를 두른 첼리스트. 어쩐지 어색하다고?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악기를 다루는 섬세한 손으로 거친 부엌일을 한다면 안 어울릴 수밖에. 그러나 프리랜서 요리연구가 김지현 (25) 씨를 보면 '요리하는 음악가' 의 모습도 그리 생경하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요리와 음악, 두 가지 다 예술 아닌가.

그가 추구하는 요리가 '먹기만 하는 요리' 라기보다 '보면서 먹는 요리' 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9살 때 첼로를 시작한 김씨는 예원중.고, 연세대 기악과를 나왔다.

"어릴 때부터 앞만 보고 해온 음악.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 갈 길은 연주가가 아니란 걸 느꼈다.

음악치료사, 디자이너…. 하고 싶은 일은 참 많았다. "

95년 유학길에 올랐다.

어학공부를 하면서 망설임은 계속됐다.

무엇을 해야 하나. 그러다가 우연히 2년제 요리인 양성소 필라델피아 요리학교 (The Restaurant School) 를 알게 됐을 때 - .갈길이 분명해졌다.

주저없이 '셰프 트레이닝 (chef training:주방장 과정)' 을 전공으로 택했다.

요리를 잘하시는 부모님의 재능을 물려 받아서일까. 아니면 악기를 연주했던 '손재주' 때문일까. 다른 이에 비해 유난히도 요리를 빨리 익혔다.

오전7시반부터 저녁6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이었다.

학교 규정상 반드시 일정기준의 식당에서 인턴과정을 밟아야 했기에 우선 외부인을 상대하는 교내 프랑스 식당에서 '진짜 요리' 를 시작했다.

손님들은 그가 여자라는 것에 처음 놀랐고 동양인이라는 점에 또 놀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거듭되는 칭찬에… '아, 요리가 내 천직이구나. ' 교내 식당에서 최고 위치까지 오른 김씨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왔다.

미국의 호텔식당 중 최고로 꼽히는 필라델피아 포시즌 호텔의 레스토랑 '파운틴' 에서 5개월간 일한 것. 최고의 요리사들 틈에서 그녀는 무엇보다도 예쁜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고급 레스토랑을 제외하곤 아직까지 우리나라 식당들은 나름의 특색을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근데 미국은 동네식당에서도 재료의 특성을 살려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만들거든요. 그건 사치라기보다 먹는 재미죠. " 지금은 실용화한 서양요리를 가르치고 있지만 기회가 닿는 대로 미국의 패션학교에서 플레이트 디자인 (plate design:요리 배치) 을 공부할 계획이다.

조금 먼 미래의 꿈은 작은 레스토랑, 혹은 카페의 주인이 되는 것. 많지 않은 손님을 예약제로 받아 그들만을 위한 메뉴를 대접할 거다.

그리고 그곳에 자그마한 무대를 만들어 뜻맞는 이들과 함께 실내악을 연주하고 싶단다.

첼로 선율과 함께하는 그녀의 요리 행로가 끝닿는 곳은 어디일까.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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