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직도 전경이 지켜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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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안기부 광주지부의 경비를 맡고 있던 전경버스에 불이 나 4명의 전경이 죽고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대학생들의 기습시위가 있을 때 시설보호 차원에서 경비를 서는 것을 '시설경비' 라 한다.

학생시위가 극성을 부리던 권위주의 시절에는 응당 경찰이 해야 할 업무중 하나였다.

그러나 문민시대를 거쳐 국민의 정부로 들어선 오늘이다.

그런데도 아직껏 특정기관 시설의 외곽경비를 경찰이 상시 맡고 있다면 이는 뭔가 잘못된 일이다.

시민들은 흔히 거리에서 피곤한 얼굴에 후줄근한 차림으로 버스 둘레에 모여 앉아 도시락을 먹는 전경들을 볼 수 있다.

사고난 전경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근무자를 제외한 17명이 잠자거나 쉴 공간이 없었다.

있다 해도 너무 좁아 버스 속에서 잘 수밖에 없다.

아직도 밤공기는 차다.

히터를 튼 채 잠이 드니 엔진과열로 화재가 발생한다.

이런 식의 사고는 전국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경찰서의 전경내무반도 좁기는 마찬가지여서 대부분이 버스 속에서 잠을 자고 있는 실정이다.

밤샘경비가 꼭 필요하다면 상응하는 시설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밤샘경비를 해야 할 만큼 격렬한 시위는 전국 어디서도 없다.

옛날식 관행이 그대로 답습돼 온 것이다.

경찰지휘관들이 하부기관을 닦달하기 위해 상시적으로 운영해 온 체제가 아무런 개선 없이 지금껏 내려온 것이다.

이제는 전경의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격렬한 시위가 계속되던 때에는 근무환경이나 복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의 근무환경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경찰수뇌부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가 된 것이다.

지금 급한 쪽은 민생치안이다.

교도소탈주범이 경찰을 비웃으며 전국을 누비고 있고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신종범죄가 꼬리를 물고 있다.

안기부나 정당의 당사경비는 자체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특별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나 비상경계가 필요할 때만 경찰이 출동하면 될 것이다.

권위주의 시절의 관행에서 벗어나 경찰 본연의 민생치안으로 돌아가는 게 더 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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