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총장의 국회출석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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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야당 단독으로 열린 국회 법사위가 김태정 (金泰政) 검찰총장에 대해 국회 출석 요구를 의결했다.

金총장이 'DJ 비자금사건' 에 대한 수사를 유보한데다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명예총재 비난발언을 하는 등 검찰의 중립성을 훼손했으므로 관련 사건의 경위를 보고받아야 하겠다는 것이 출석요구 이유다.

검찰총장에 대한 국회 출석 논의는 처음은 아니다.

민감한 정치적 사건의 수사 종결 후 주로 불만을 가진 소수 야당측에서 목청을 높였지만 성사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 야당이 주장했으나 야당이 다수 의석을 가진 관계로 의결까지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검찰총장의 국회 출석 증언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수사기관인 검찰의 총수가 외부 증언을 염두에 두고 사건 수사를 지휘.감독한다면 정치적 중립이나 형평은 지켜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검찰총장을 오라가라 하면 일선 검사가 어떻게 정치권의 이해 (利害)가 첨예하게 맞서는 정치적 사건이나 권력 밀착형 비리를 엄정하게 수사할 수 있겠는가.

검찰총장의 국회 출석이 왜 불합리한가 하는 점은 야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더 잘 아는 일이다.

이미 여당 시절 야당의 똑같은 주장을 한사코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엊그제 국회 의결 과정에서 어느 의원이 개인적이나마 반대의견을 밝힌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여야가 바뀌었다고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관이 뒤바뀔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검찰총장의 국회 불출석은 장점이 더 많은 관례다.

검찰이나 국회를 위해서, 크게는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서 이같은 관례는 계속 지켜나가는 게 옳다고 본다.

그렇지만 검찰 또한 국회의 이번 결의를 자성 (自省) 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국회의 이같은 요구를 자초한 면이 있다는 지적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최근의 검찰 행보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결코 곱지만은 않으므로 자중자애 (自重自愛)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제 검찰도 권력 해바라기 행태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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