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고개드는 본고사 부활, 대학현실 모르는 이상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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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은 개혁의 도마 위에 오른다.

그중에서도 대학입시 정책은 많은 학부모와 수험생들의 관심사항이기 때문인지 가장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럴 때마다 수험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교육현장에 있는 교육자들은 매우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한 지 불과 열흘 남짓도 안돼 대학입시의 자율화와 대학별 본고사 부활을 제창함으로써 다시금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주장은 정치가들의 우리나라 대학 현실에 대한 이해부족에 기인하는 것 같다.

시험문제 출제능력, 보안유지 능력, 채점의 객관성 유지, 공정성 유지 등의 문제는 경험이 있는 대학교수라면 모두가 회의를 품고 있는 문제의 목록들이다.

대학마다 수십~수백명의 교수가 대입문제 출제와 관리, 평가에 참여하느라 연구를 포기해야 하며, 불과 며칠만에 수만장의 답안지를 채점해야 하는 촌극이 대학마다 벌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무엇보다 수험생들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시험문항 개발.채점 등이 힘들다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

수험생들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오랜시간 노력하는데 그만큼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외부에서는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이 상당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대학에서 근무해 보면 한국의 대학이 얼마나 열악한 인력과 교육환경에 처해 있는가를 잘 알게 된다.

특히 자기 학문분야에만 익숙한 대학교수들이 고등학교 학생들의 수학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문제를 출제하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차라리 현재와 같이 교육부에서 대학교수들을 선발해 일정기간 출제에 종사하게 하는 수학능력시험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학능력시험은 그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는 제법 타당한 측정도구로 정착돼가고 있다.

수학능력시험의 변별력 문제를 일부 대학에서 문제삼고 있지만 그 시험의 목적이 특정대학의 입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논리를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미국은 우리의 수능시험과 유사한 대학진학적성검사 (SAT) 라는 시험을 보고 있는데 매년 수십명의 만점자가 탄생하고 있다.

미국의 대학 신입생 선발은 SAT외에도 신입생의 예체능 능력, 사회봉사 실적, 그리고 학내활동의 적극성 등을 고려해 이루어진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수능시험.학생부.논술시험 등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제도가 차선의 대책일 수밖에 없다.

새 정부가 진정한 교육개혁에 뜻이 있으면 비민주적인 초.중등학교 및 대학의 의사결정구조를 혁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황폐해진 우리 교육의 내실을 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지원과 질적 규제를 강화하는 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전영평〈대구대 교수·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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