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마음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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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한 사내가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섰다. 저자를 향하던 그의 발길은 다시 어느 금방을 찾는다. 금을 파는 가게 문에 불쑥 들어선 이 사내의 행동이 수상하다. 전혀 거리낄 게 없다는 듯이 가게 안의 금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던 것.

주위 사람들이 기가 막혀 바라보고 있는 사이 금을 가득 채워 넣은 사내는 부리나케 금방 문을 나섰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포졸이 이 사내를 붙잡았다. 포졸은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도대체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데 금을 훔친 이유는 뭐냐”고 포졸은 물었다.

사내의 대답이 걸작이다. “아 그랬었나요. 하지만 금을 훔칠 때에는 내 눈에는 다른 사람이 전혀 보이질 않던데….” 황금에 눈이 먼 사내의 이야기다. 『열자(列子)』에 등장하는 우화로, 글 제목은 ‘제인확금(齊人攫金)’이다.

뭔가에 홀려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순자(荀子)는 “마음이 자리를 못 잡으면 눈앞의 흑과 백을 가리지 못하고, 바로 옆에서 요란한 북소리가 울려도 듣지 못한다(心不使焉, 則白黑在前而目不見, 雷鼓在側而耳不聞)”고 했다.

나뭇잎으로 눈을 가리면 앞의 태산도 보이지 않고, 콩알로 귀를 막으면 우레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얘기도 있다. 일엽폐목(一葉蔽目)이라는 고사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무형의 욕심에 눈이 가려지면 앞뒤 못 가리고 황금에 다가서는 제나라 사내의 꼴이 나온다.

요즘 ‘박연차 게이트’에 얽혀 검찰청을 들락거리는 이들을 보면서 새삼 떠올려지는 얘기들이다. 가지려 하면 할수록 욕심은 더욱 커지고 급기야 이를 주체하지 못해 망신을 당하는 사람들이다. 전직 고위 관료로서, 어엿한 기업의 회장으로서 부정한 돈에 초연할 법했지만 결국 그 욕심을 다잡지 못한 모습이다.

사람들이 화장실에 걸어놓고 감상하는 글귀가 있다. “청산(靑山)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푸른 하늘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 하네.” 고려 말에 활동했던 나옹선사의 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있는 사람이 더 한다’는 말이 있다. 욕심은 영화를 누려 본 사람들이 더 챙기는 법이다. 사회의 엘리트로서 욕심 없는 마음자리가 아쉬운 사람들은 나옹선사가 남긴 글귀를 화장실에 걸어두고 비움의 미학을 곱씹어 볼 일이다.

유광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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