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 전주, B-보이와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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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리듬의 펑크음악이 울리는 가운데 한 소년이 오른 손만으로 바닥을 짚고 물구나무를 선 채 온몸을 튕기면서 뛰는 핸드 팝을 뽐냈다. 이에 질세라 또 다른 소년이 머리를 바닥에 붙인 채 몸 전체를 팽이처럼 돌리는 헤드 스핀과 등을 대고 온 몸을 풍차 모양으로 돌리는 윈드 밀을 해 보였다.

18일 전주시 완산구 태평동 청소년문화의 집. 한쪽 벽면에 대형 거울이 달린 지하 연습실은 젊은 춤꾼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중ㆍ고생과 대학생 20~30명은 무리를 지어, 또는 혼자서 몸을 흔들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헤드 스핀을 했던 장성민(16ㆍ고1)군은 “매일 학교 수업이 끝나면 여기에 와 3~4시간씩 춤을 춘다. 세계 최고의 댄서가 되고 싶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는 3년 전부터 춤을 췄다. 시내를 나갔다 우연히 비보이들의 거리공연을 보고는 그 멋진 모습이 가슴에 꽂혔다. 친구와 함께 청소년문화의 집을 찾아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고교 진학을 앞두고는 “이제 춤을 그만두고 공부하라”는 부모와 마찰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로 성공할 테니 믿어달라”고 설득했다. 지난 해에는 한두 살 많은 형들과 ‘커버더플로어’라는 팀을 만들어 전국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했다. 그는 “고난도 기술을 하나씩 시도하고 성공할 때마다 느끼는 희열과 성취감은 말로 다 표현 못한다”며 “무대 위에서 받는 박수나 환호는 덤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태평동 청소년문화의 집에는 성민이 같은 비보이들이 하루 평균 50여명 모인다. 주말이면 80~100명이 몰린다. 전주시내 다른 5곳의 청소년문화의 집도 춤추는 청소년들로 붐빈다. 전주가 '비보이의 메카'로 불리는 까닭이다.

비보이의 씨를 뿌린 것은 세계적 비보이 그룹으로 인정받는 ‘라스트포원’. 이들은 초창기 5~6년간 태평동 청소년문화의 집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했다. 당시 중ㆍ고생이었던 그룹 멤버들은 연습을 거듭하고 실력을 가다듬은 끝에 2005년 비보이 월드컵으로 불리는 독일 ‘배틀 오브 더 이어’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그 멤버로 활동했던 배병엽(25)씨는 “청소년문화의 집이 생기기 전에는 지하보도·공원 등 콘크리트 바닥서 춤을 추는 바람에 머리가 까지는가 하면 팔ㆍ다리 곳곳이 찢기고 긁히는 등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2005년 서울로 활동무대를 옮긴 라스트포원은 지금도 1~2개월에 한번씩 전주에 내려와 후배들을 지도한다.

청소년문화의 집은 제 2의 라스트포원을 꿈꾸는 비보이들의 둥지 역할을 한다. 무료로 비보이 스쿨 여는가 하면 동호인 팀을 짜 주고, 분기 별로 공연ㆍ워크숍도 연다. “전주에 가면 고수들이 많다”는 소문이 나면서 인근 익산ㆍ군산은 물론 대전ㆍ광주 등의 비보이들까지 찾아 온다.

전주의 비보이들은 고사동 ‘영화의 거리’등에서 매달 한차례씩 공연하고, 춤 솜씨를 겨루는 비보이 배틀을 진행한다. 이들을 위한 비보이 광장도 있다. 16~17일 전주 실내체육관에서는 지자체 유일의 비보이 그랑프리대회가 열렸다.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비보이 27개팀이 참가해 열띤 경연을 펼친끝에 '그라운드 스크래치'가 1등을 차지했다.

송하진 전주시장은 “우리 고장의 비빔밥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비보이의 춤에 전통을 버무려 한류문화의 대표 상품으로 키워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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