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지역할당제' 문제점…평등권 침해 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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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치권이 지역갈등 및 지역간 불균형발전 해소를 명분으로 '인재 지역할당제' 라는 기발한 카드를 내놓았다.

한국적 고질병인 지역갈등이 특정지역 인재의 편파기용에서 출발한다는 분석에서다.

지역간 불균형도 권력의 중추에 올라간 이들이 연고지에만 돈을 쏟아부어 초래된 현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같은 파행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고위직 인사의 선발때부터 지역안배를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물론 국가시험에서의 지역할당을 법률로 강제하기보다 다른 정책수단을 사용, 완만한 '탕평책' 을 쓰는게 낫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부작용이 적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지금처럼 지역갈등이 뿌리깊은 상황에서는 '극약처방' 이 절실하다고 판단, 인재 지역할당제의 법률화 작업에 나선 것이다.

또 이 제도는 지방대학 육성이라는 부수효과도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이 아이디어는 지방대학 총장들을 중심으로 처음 제기됐었다.

우수한 인재들을 죄다 서울로 빼앗겨온 지방대학들은 이 제도가 실시되면 사정이 달라지리라 기대하고 있다.

서울보다 고향에서 수학하는 쪽이 국가시험 합격에 유리할 것으로 지방학생들이 판단, 고향에 남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이같은 논리에 공감한 정치권은 지난해 11월엔 공청회도 개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이번에 구체적인 법률화 작업에 착수하게 됐다.

그러나 지역할당제가 현실화하기까지는 첨예한 법률논쟁이 기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입법화할 경우 헌법소원마저 제기될 게 뻔하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제도가 헌법상의 평등권을 심각히 침해한다는 것이다.

국가고시는 기본적으로 '실적주의' 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개개인의 축적된 능력을 제도화된 시험으로 측정, 엄격한 성적순으로 등용한다는 의미다.

반면 할당제도는 응시자 개개인의 능력 외에도 어느 지역에서 시험을 치렀느냐에 따라 당락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

'기회균등의 원칙' 에 위배된다는 얘기다.

다음으로 입법고시와 같이 선발인원이 10~15명에 불과할 경우 제주도처럼 인구 희박 지역에는 아예 할당인원이 없게 된다.

또 대학 진학생들의 학교 선택문제를 고려, 법률시행을 4년 뒤로 미룬 것도 문제다.

4년 뒤의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 법을 공포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때문에 45명의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이 법안이 무사히 행정위와 법사위, 그리고 본회의를 통과해 법률로 살아 남을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출세의 지름길로 여겨지는 국가고시에 지역안배의 요소를 가미하겠다는 입법부의 발상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게 분명하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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