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안기부장 기용 배경…안기부通 보내 통치권 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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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새 정부 인사에서 가장 고심한 자리가 안기부장이다.

직책의 중요성도 중요성이지만 안기부 개혁도 절실한 탓이다.

한마디로 믿고 쓸 수 있는 사람을 고르지 않으면 안되는 자리다.

인물은 비교적 많았다.

때문에 선택의 고민도 있었다.

당안팎 추천도 이해관계에 따라 달랐고 자민련도 간섭하려 했다.

조각구성과 맞물려 생각해야 했다.

인선과정에서 왔다갔다한 인상을 준 까닭은 이런 복잡한 사정에서 연유한다.

金대통령은 막판까지 고민하다 3일밤 늦은 시각 이종찬 (李鍾贊) 씨로 최종 결심했다.

표면적으론 안기부 출신인 李신임부장이 안기부 사정을 잘 안다는 점을 들고 있다.

李부장이 대선후 정부출범전까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맡으면서 안기부 보고를 따로 받은때부터 金대통령은 그를 염두에 두고 테스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이유는 좀 다르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JP총리임명동의 파동을 겪으면서 안기부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金대통령의 시각이 상당부분 조정됐다" 고 설명했다.

안기부 개혁도 좋지만 조직 장악력을 겸비한, 안기부 사정에 정통한 사람이 '통치권 차원의 보좌' 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얼마전까지 유력히 검토했던 조승형 (趙昇衡) 헌재재판관 등 후보들을 李신임부장으로 전격 교체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李부장이 자민련 지원까지 받은 사실도 고려됐을 법하다.

金대통령으로선 자민련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데다 한나라당과도 관계를 잘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李부장은 인화에 강한 분" 이라는 박지원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의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기도 한다.

朴대변인은 "李부장이 안기부의 국내정치 개입을 막는데 큰 역할을 할 것" 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대로 될지는 앞으로 유심히 지켜볼 대목이다.

이밖에 李부장이 서울출신이라는 지역적 고려도 있었다.

법무.국방장관 등 중요부서에 호남출신을 기용한 만큼 안기부장직을 같은 호남출신인 趙헌재재판관이나 한광옥 (韓光玉) 국민회의부총재에게 맡기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전북출신인 진념 (陳稔) 기아그룹회장을 기획예산위원장에 임명한 데도 지역은 상당한 고려요소였다.

내각 17개부 장관중 이 지역출신이 단 한명도 없는데 따른 발탁이다.

물론 陳위원장을 최적임자로 보았다고 한다.

옛 경제기획원에서 25년간 일한 기획통으로 각 경제부서를 두루 섭렵한 점을 金대통령은 높이 샀다는 후문이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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