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째 독감 앓는 윤증현 장관 “구조조정, 죽느냐 사느냐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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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윤증현(그림) 기획재정부 장관은 요즘 지독한 감기를 앓고 있다. 3주일째다. 음성은 잔뜩 쉬었다. ‘경제위기와의 전쟁’을 이끌면서 체력이 소진된 탓일까. 20일 출범 100일을 맞는 ‘윤증현 경제팀(윤 장관-진동수 금융위원장-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이어지는 MB 2기 경제팀)’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경제는 여전히 ‘시계(視界) 제로’인데, 정작 쓸 수 있는 정책 카드는 별로 없다. 감세와 재정 확대 카드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18일 라디오 연설에서 현 경제 상황을 자동차 운전으로 비유했다. “강풍은 다소 잦아들어 천천히 움직일 수 있게는 되었지만 여전히 안개가 짙게 드리워져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재정 확대 여지 크지 않아=윤 장관은 전임 강만수 장관과 처지가 다르다. 강 전 장관은 대대적인 감세 정책을 펼치며 경기 부양에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윤 장관은 재정 건전성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규모는 60조원을 넘어섰다. 올해 예상되는 재정수지 적자는 51조원(국내총생산 대비 약 5%)으로 지난해(15조6000억원)의 세 배가 넘는다.

재정 상태를 돌아봐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윤 장관은 18일 “추가 감세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못 박았다. 그동안 취해 놓은 감세 효과가 몇 년간 이어지는 데다 올해 마이너스 성장으로 세수가 오그라들기 때문이다. 예산 편성 전략을 짜는 것도 고민스럽다. 지난해처럼 예산을 크게 늘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경기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마당에 긴축으로 단숨에 전환하기도 어렵다. 윤 장관은 일단 세출을 구조조정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위기 극복에 쓰인 한시적 사업은 지원을 중단하고, 각 부처 재량 지출의 10% 이상 감축을 추진한다. 위기 극복의 시급성에 가려져 있던 재정 건전성 관리 쪽으로 발걸음을 서서히 옮겨놓는 셈이다.

◆리더십 발휘해야 구조조정 성공=익명을 요구한 재정부 고위관계자는 “그동안 환부에 거즈를 넉넉히 대놓았다. 그 거즈 밑에서 상처가 아물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계속 곪고 있었다면 수술 범위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환부는 우리 경제의 현실을, 거즈를 갖다 댄 것은 재정과 통화를 풀어놓은 것을 말한다. 상처 부위가 계속 곪지 않으려면 우리 경제의 부실 제거를 위한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다.

성신여대 강석훈(경제학과) 교수는 “올 상반기에 저금리와 재정 확대로 위기는 막았지만 구조조정을 통한 경제의 기초체력 강화로 연결 짓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정부는 모든 중소기업의 대출을 연장해 주고 신용보증을 100%까지 해주는 강수로 한계기업까지 붙잡아 줬다. 그러나 세계 경기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한계기업의 생명을 연장해 주는 데는 분명 문제가 있다.

윤 장관은 “현 상황에서 구조조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고 구조조정의 당위성에 공감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엔 고통이 따른다. 당장 실업자가 더 늘고, 민간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외환위기 때와 달리 부실 부문을 정밀하게 도려내는 구조조정 솜씨가 있어야 하고, 고통을 감내하는 데 동참하도록 하는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실물경제 침체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민간 부문의 성장 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규제 완화를 가속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렬·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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