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군단'고려증권 문병택, "코트가 그리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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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배구를 하고 싶습니다.”

98한국배구 슈퍼리그에서 'IMF군단' 돌풍을 일으킨 고려증권의 주역 문병택 (27.1m95㎝) 은 요즘처럼 코트가 그리운 적이 없다.

아직 어두컴컴한 오전6시. 문병택은 트레이닝복을 챙겨 집을 나선다.

받아줄 팀도 없건만 오늘도 경기도 용인 신갈에 있는 고려증권 연수원 체육관에서 상대선수없는 코트를 향해 힘찬 스파이크를 날린다.

그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어머니에게 문안전화를 하는 것. “몸은 좀 어떠냐. ” “괜찮아요. ”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그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매일 똑같은 대화지만 전북부안에서 농사를 짓는 어머니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 하루종일 아무 일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팀에 복귀한 그는 공익근무요원 기간중 어머니께 용돈 한푼 드리지 못했다.

그가 받은 월급은 기본급 80만원. 용돈은 커녕 자기 식구 생계유지도 빠듯했다.

팀에 복귀하면 나아지리라 생각했지만 복귀하자마자 모기업의 부도로 팀이 해체위기에 처했다.

청천 날벼락이었다.

자기만 믿고 뒷바라지해온 부모님, 두돌이 채 안된 재롱둥이 아들 혁. 그는 이번 슈퍼리그대회에서 최선을 다했다.

몸이 부서져라 공을 때렸다.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아들과 어머니 얼굴이 힘의 원천이었다.

“1년6개월이나 쉰 선수가 저렇게 잘 할 수 있느냐.” 주위 사람들을 감탄시켰다.

“팀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 밖에 없었어요.” 막판에 갑자기 체력이 떨어져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

팀을 인수하겠다는 기업은 아직 없다.

주택은행이 인수한다는 말이 들리지만 최근엔 '어렵다' 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심정이에요. ” 그는 오늘도 스파이크를 날린다.

“언젠가 나의 스파이크를 받아줄 상대가 있겠지” 하는 간절한 바람을 싣고.

김종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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