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학자 다수 "김종필 총리서리 체제 위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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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3일 출범한 김종필 (金鍾泌) 총리서리 체제에 대한 헌법학자들의 견해는 위헌론이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철수 (金哲洙.서울대) 교수 등 일부 학자들은 2일 여야간 충돌 끝에 중단된 임명동의 표결을 '동의안 처리 부존재' 로 간주, 총리서리 임명이 합헌적인 대통령의 정치행위라는 입장이지만 헌법학계 대다수의 학자들은 위헌임을 지적하고 있다.

임명동의 투표 자체가 불투명할 당시 비정상적인 국회 기능을 이유로 서리체제의 합헌성을 주장했던 이화여대 김문현 (金文顯) 교수는 국회에서 투표가 이뤄진 이상 서리 임명은 위헌성이 크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총리서리 체제의 위헌성을 주장한 연세대 허영 (許營.헌법학) 교수의 글이다.

국무총리서리 체제가 위헌인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우리 헌법의 통치구조는 3권분립에 따른 대통령제를 기본 골격으로 하기 때문에 입법부.행정부.사법부가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통치권 행사가 절차적으로 정당성을 유지해 나가게 돼있다.

국회가 가지는 국무총리 임명동의권도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정치적 인사권에 대한 국회의 견제장치에 속한다.

따라서 대통령이 국회의 임명동의를 받지 않은 사람을 국무총리서리로 임명하는 것은 국회의 인사통제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로 볼 수 있기 때문에 3권분립의 원칙을 무시하는 명백한 위헌적인 처사다.

우리 헌법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는 국가기관에 대해 '서리제도' 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국회의 임명동의는 사후 승인이 아니라 사전 동의를 뜻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 헌법학계에 이론이 없다.

둘째, 대통령이 국회의 사전동의를 받아 국무총리를 임명하게 하는 헌법이론적인 근거는 국무총리가 행사하는 국정행위에 대해 민주적인 정당성을 부여해준다는 데 있다.

우리 통치구조에서 국무총리는 행정부의 제2인자로서 대통령을 보좌해 행정 각부를 통할하고 대통령 유고 때는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헌법기관이다.

국무총리가 이처럼 중요한 국정행위를 수행하는 데는 그의 권능행사에 대한 민주적 정당성이 필요하다.

따라서 국회의 임명동의를 받지 않은 국무총리서리의 국정행위는 아무런 민주적 정당성 없이 이뤄진 일이기 때문에 유효한 국정행위로 간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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