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 페닉의 가르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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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호 16면

아마추어 골퍼 A가 골프를 처음 배우던 시절 에피소드. 10년 전쯤 이야기다. A는 벼르던 끝에 집 근처 빌딩 지하에 자리 잡은 실내 골프 연습장을 찾아갔다. 티칭 프로라는 사람은 7번 아이언을 쥐여 준 뒤 무작정 똑딱 볼을 치라고 했다.

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59>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 지금 팔로만 들어올리고 있잖아. 몸통 회전을 좀 더 해야지. 그래 좋았어. 그렇게 계속해 봐.”

티칭 프로는 A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데도 반말을 섞어 가며 골프를 가르쳤다. 더구나 한 시간가량 공을 때리는 동안 이 티칭 프로가 직접 지도를 해 준 건 5분도 채 안 됐다. A는 골프를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다. 그래도 꾹 참고 주변의 권유에 따라 골프 연습장을 바꿔 보기로 했다.

A는 이번엔 ‘닭장’이라고 불리는 골프 연습장을 찾아갔다. 이번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티칭 프로란 사람은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노골적으로 모멸감을 줬다.

“도대체 어디에서 골프를 배운 거요.”

티칭 프로는 기본적인 골프 스윙 방법에 대해 설명을 늘어놨지만 정작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은 해 주지 않았다. 클럽을 치약을 쥐듯 가볍게 잡아야 한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왜 ‘똑딱’ 볼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프로가 시키니까 그대로 따라 할 뿐이었다.

에피소드의 주인공 A는 바로 필자다. 아마추어 골퍼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두 번쯤 해 봤을 터다. 물론 지금은 사정이 많이 바뀌었을 거라고 믿지만 말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골프를 가르치는 사람의 태도와 배우는 이의 자세를 말하고 싶어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하비 페닉(Harvey Penick·1904~1995) 이야기를 하고 싶다. 페닉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프 교습가로 꼽히는 이다. 골프 교습가로선 유일하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이다. 그의 책 『리틀 레드 북』을 보면 페닉이 60여 년 동안 골프를 가르치면서 개발한 노하우와 함께 골프에 대한 그의 진지한 자세를 읽을 수 있다. 학생에겐 겸손하면서도 골프 교습가의 프라이드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그의 꼿꼿한 자세는 가르치는 이에게도, 학생에게도 귀감이 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아스피린을 처방한다고 해서 한 병을 다 먹어서는 안 된다. 골프 스윙에서는 아주 작은 변화 하나도 커다란 차이를 만들 수 있다(중략). 교습은 연습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연습한 진가가 나타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페닉은 갔지만 그의 가르침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최근엔 데이비드 레드베터, 부치 하먼, 행크 헤이니 등 미국의 티칭 프로들이 이름을 떨치고 있다. 국내엔 고덕호·임경빈·한연희·전현지씨 등이 활동 중이다. 이들처럼 실력과 인격을 겸비한 티칭 골퍼들도 많지만 다른 티칭 골퍼들도 모두 페닉처럼 훌륭한 교습가인지는 의문이 간다. 비싼 수업료를 받고도 불성실한 레슨으로 빈축을 사는 이도 없지 않다.

골프 교습가는 학생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정중한 태도를 갖춰야 하고, 왜 그런지 골프 원리를 자세하게 설명해 줘야 한다. 배우는 사람 역시 골프 선생님을 믿고, 존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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