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여야政爭 못버린 舊態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외환위기로 온국민이 고통을 강요받고 있는데 많게는 1백만 공무원, 적어도 10만 중앙공무원이 일손을 놓고 있다.

관료조직은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져야 할 집단이기도 하지만 IMF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열심히 일해야 할 조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은 한결같이 "새 장관이 올 때까지 자리만 지키고 있다" 고 말한다.

새 대통령이 취임했는데 손발인 관료조직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새 장관의 임명도, 정부조직법의 공포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거대야당 한나라당이 새 정부 출발의 첫걸음인 JP총리 임명을 반대하고 있어서다.

총리임명에 대한 동의여부는 국회 몫이고,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정 공백을 초래하는 또다른 위기상황에서 '한나라당은 그 권리와 의무를 적절히 행사하고 있느냐' 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첫째 의문은 민의 (民意) 를 대변하는 정당으로서 한나라당은 과연 민의를 따르고 있느냐는 것이다.

둘째는 '왜 정정당당히 국회표결에 참여하지 않느냐' 는 의문이다.

한나라당은 "몸싸움 등 볼썽사나운 모습을 우려해" 라고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여당시절 그토록 주장했던 '비밀투표' 로 결정하자면 몸싸움이 생길 일이 없다.

표결로 동의안이 부결되더라도 지금보다 문제는 간단해진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JP 대신 새 총리를 임명해야 하기에 국정공백이 지속되지는 않게 된다.

임명동의가 된다 해도 거대야당은 여전히 총리를 견제할 권한을 갖고 있다.

새 총리가 국정을 잘 수행하지 못할 경우 재적의원의 3분의1이면 해임을 건의할 수 있고, 과반수의 찬성으로 해임시킬 수 있다.

이런저런 점을 곱씹어 봐야 한다.

그렇다고 여권이 잘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당연히 한나라당만 질책할 성질은 못된다.

오히려 국정의 최종책임은 여권에 있다는 측면에서 더많은 질책이 가해져야 한다.

국정을 책임진 여권으로선 다수야당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설득하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다수가 분명히 안된다고 하는데도 밀어붙여 놓고 국사가 막중하고 화급하니 알아서 하라는 식은 곤란하다.

특히 야당의 반대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여권이 여론을 내세워 힐난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거야 (巨野) 여서 곤란하다는 것은 변명이 못된다.

오병상〈정치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