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김영삼 양김 대통령 영수회담 시각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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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대통령은 김영삼 (金泳三) 전대통령과 여러 면에서 대조되는 통치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총리인준 문제를 풀기 위한 즉각적인 여야 영수회담 제의가 그 하나다.

YS는 영수회담을 잘 안했다.

야당이 자꾸 하자고 요구하고, 여론도 하라고 채근해야 겨우 했다.

그리고선 그것이 큰 결단임을 내세웠다.

영수회담을 일종의 시혜로 생각했던 것이다.

96년 12월26일 새벽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의 노동법.안기부법 개정안 날치기 처리로 정국이 경색됐지만 김영삼대통령은 가만히 있었다.

야당의 여야 영수회담 요구를 거의 한달동안 묵살하다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97년 1월21일 영수회담을 열었다.

YS는 재임 5년동안 모두 15번의 여야 영수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10번은 해외순방 등에 대한 설명회 성격이어서 별 의미가 없었다.

반면 DJ는 체면과 모양새보다 일 중심으로 나가고 있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주저하거나 뜸들이지 않고 야당과 대화할 것이라고 박지원 (朴智元) 청와대 공보수석은 말했다.

金대통령은 취임 때 야당의 협조를 요청하면서 "나도 모든 것을 여러분 (야당) 과 상의하겠다" 고 밝힌 바 있다.

金대통령이 지금의 마음을 견지할 경우 향후 여야간에는 영수회담을 비롯한 각종 대화가 활발하게 이뤄져 야당도 '국정 파트너' 다운 대접을 받게 될 것 같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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