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산하 우리풍물]7.강원도 정선군 가목리 된장마을…'장맛' 익는 메주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6면

된장과 간장. 이 둘은 우리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온 먹거리의 뿌리요, 원천으로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 밥상을 떠나지 않을 존재들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메주를 띄워 된장을 만들고 큰 가마솥 밑에 장작불을 때 간장을 달였다. 간장 달이던 날, 아이들은 엉덩이가 델 정도로 달궈진 구들장에서 빈둥거리며 놀다가 일손 바쁜 어머니를 보채 메밀묵.김치전 따위를 얻어먹기도 했었다.

하지만 메주콩을 띄우고 밤새 간장을 달이던 그 푸근한 정경도 이제는 점차 사라져 가는 풍경이 되고 말았다.

햇볕이 드는 날이면 장독 뚜껑을 열어 볕을 쪼이고, 날이 궂으면 서둘러 항아리 뚜껑을 챙기던 모습도 보기 힘들게 됐다.

검정 숯덩이와 빨간 고추가 둥둥 떠있는 항아리 안에서 익어가던 향긋한 간장냄새도 아파트 도시인들에게는 이제 아련한 기억속에서나 남아있을 뿐이다.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 가목리는 오지인 정선에서도 더욱 외진 곳으로 아직도 군도에서 벗어나 비포장도로를 1㎞나 들어가야 하는 산골마을이다.

가목리에 가면 '메주골짜기' 가 있다.

소나무 숲을 지나고 계곡물을 따라 걷다보면 문득 2천여개의 항아리와 마주치게 된다.

운동장처럼 넓직한 마당에 사열하듯 줄지어 선 이 항아리들은 보기는 힘들게 된 된장독.간장독들이다.

한햇동안 이들 항아리에서 만들어지는 된장은 무려 콩 1천2백가마분. 10여가구에 불과한 가목리 주민들이 겨울 한철 밤낮으로 꼬박 매달려도 일손이 빠듯한 분량이다.

가목리에 된장 항아리가 들어선 것은 지금으로부터 8년전. 첼리스트 도완녀씨와 돈연스님이 가목리에 둥지를 틀면서부터다.

이들 부부는 가목리에 들어오자마자 농한기를 이용해 마을 주민들과 함께 '된장농사' 를 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항아리 30개로 시작했다.

해발 7백m의 청정고원에서 좋은 콩과 깨끗한 물, 여기에 '시골 정성' 이 합해져 만들어진 된장은 잊어버렸던 도시인들의 입맛을 되살리게 됐고, 날이 갈수록 주문량이 늘어나면서 급기야 된장독이 2천여개로 불어났다.

가목리 주민들은 겨울한철 가구당 3백만~4백만원의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된장농사가 커지면서 가목리 주민들의 겨울은 더이상 한가하지 않다.

산골을 돌면서 메주콩을 수매하고, 메주를 띄우고, 된장을 쑤고, 간장을 달이는 일에 온통 매달리다 보면 어느새 봄이다.

가목리에는 5월이나 돼야 봄이 찾아온다.

지난 주말. '메주골짜기' 에는 1m도 넘는 폭설이 내려 장독들이 모두 눈 속에 파묻혔다.

눈 속에서 익어가는 된장은 어떤 맛일까. "어려서부터 구수하고 뜨거운 된장찌개를 훌훌 불어가며 먹다보면 인내심도 강해지고 밥투정도 없어지는데 요즘 애들이 인스턴트 식품에만 길들여지니 안타까워요. "

도완녀씨는 "오래 익힐 수록 맛을 내는 된장. 간장처럼 우리의 맛은 기다리는 인내가 특징" 이라고 말한다.

된장을 맛있게 담그려면 좋은 재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성이 중요하다는 그녀는 좋은 효모균이 잘 자라도록 된장에게도 음악을 들려주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그녀는 이따금 된장독 곁에서 첼로연주를 한다.

도시인들에게 부치는 된장을 퍼담던 가목리의 한 할머니는 "흙으로 구운 항아리에 깨끗한 콩과 물과 소금이 전부야. 더 들어갈 것도 없고 덜 들어갈 것도 없어. " 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맛있는 된장 담그는 비결' 을 들려줬다.

글·사진 = 이순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