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김대중 청와대]2.수석들 '묵은 정치때' 벗겨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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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대중 대통령에게 있어 비서는 참모 (스태프) ,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비서의 역할은 대통령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정책아이디어를 건의하는 것으로 끝날 뿐이다.

이를 토대로 결단하고 지시를 내리는 일은 전적으로 대통령의 몫이다.

자리를 이용해 월권 (越權) 하는 것은 물론 주어진 역할을 벗어나 과잉의욕을 보이는 것조차 용납지 않는다.

"일단 옷을 만들어주면 그 옷에 맞도록 몸을 맞춰야 한다.

몸집이 커져 옷이 작아져도 참고 견뎌야지 섣불리 옷을 늘렸다간 금방 눈밖에 나게 된다" 는 게 야당시절부터 金대통령을 보좌해온 비서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일정한 권한을 주고, 그 후에는 믿고 맡겨버리는 김영삼 (金泳三) 전대통령과는 용인 (用人) 스타일이 대조적이다.

최근 단행된 청와대 비서진 인선에서도 이는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새 정부는 총무.민정.의전수석을 폐지, 1급비서관으로 격하시켰다.

'작은 청와대' 를 위한 시도란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본래의 기능보다 정치력이 지나치게 부각돼온 비서역할을 '정상화' 하겠다는 뜻이 강하다.

비서역할 위에 덧씌워져온 정치력이란 '거품' 을 걷어내겠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영삼 청와대의 홍인길 (洪仁吉) 총무수석과 새 청와대의 박금옥 (朴琴玉) 총무비서관은 대비된다.

洪수석이 민주계를 대리 관리하며 청와대 안팎을 휘저은 것을 의식한 金대통령은 아예 자신의 여비서 출신을 임명한 것이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지는 못했지만 당초 정무수석에 이강래 (李康來) 특보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기능상 정치력이 요구되는 자리조차 철저히 참모로 남아주기를 바라서다.

'암행어사' 라는 별명으로 대통령 국정수행의 핵심축인 민정수석을 폐지, 1급비서관 자리로 한 것은 민정비서관이 철저히 '대통령의 눈과 귀' 로 기능하기를 주문한 것. "더이상 제2의 홍인길 (洪仁吉).이원종 (李源宗) 은 없다" 는 金대통령 고유의 용인철학이 드러난 셈이다.

金대통령은 또 개인의 능력이나 전문성을 중시한다.

이와 관련, 국민회의의 한 관계자는 "金대통령은 평생 대통령 공부를 해왔다" 며 "비서 개개인이 가진 능력을 활용, 국정운영에 반영할줄 알아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이런 것들을 위해 金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의 활성화를 주문하고 나섰다.

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한다는 방침이다.

난상토론과 논쟁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정책에 반영하는 재료로 쓰기 위해서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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