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예의·감사·배려도 경쟁력…국민의식부터 '구조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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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나라 밖에서 떠돌고 있는 한국 사람에 관한 '최불암 시리즈' 같은 유머가 하나 있다.

어느 외국인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한국인인 내가 듣기에는 정말 입맛이 썼다.

그러나 사실이 그러하니 나무랄 수도 없어 얼굴은 붉혔지만 함께 웃고 말았다.

북한.한국.일본 사람 셋이서 식당에 갔다.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터가 테이블에 와서 말했다.

“죄송하지만 오늘 쇠고기가 떨어졌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일본인은 '품절' 이란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고, 북한 사람은 “쇠고기가 무엇이냐” 고 물었다.

그리고 한국인은 그 웨이터에게 '죄송하다' 가 무엇을 뜻하느냐고 물었단다.

서양사람들은 '익스큐즈 미' 나 '빠동 (pardon)' 이란 표현을 풍부하게 사용한다.

언젠가 제네바의 번화가에서 쇼윈도를 보면서 걷고 있다가 지나가는 행인의 팔을 내가 스쳤는데도 그 행인이 “빠동” 을 연발해 당황했던 적이 있다.

돈 안드는 그 말 한마디가 내게 어떤 감동을 주었는지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어떻게 행동을 했기에 '익스큐즈 미' 의 뜻을 모르는 무례한 국민으로 여겨지는지 알 수가 없다.

정이 많고 예의가 바른 민족이라고 자처하는 우리인데도 말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거리에서 오줌을 누면 안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귀가 아프게 들었지만 남을 도우라는 말을 들은 기억은 없다.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은 하지 말라는 말도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정작 도움을 제공하려 해도 나를 믿지 못해 도움을 거절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백화점이나 대형 빌딩에서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어도 고맙다는 눈길 한번 보여주지 않고 마치 내가 문지기인 양 그냥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때는 쥐고 있는 문을 놓을 수도 없이 사람들이 그냥 몰려 들어올 때도 많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마찬가지다.

급하게 달려가면서 조금 기다려달라고 손짓했는데도 기다려주려는 마음 없이 그냥 훌쩍 혼자서 올라가버리는 경우가 대부분 아닌가.

그런가 하면 119구조대가 부상한 사람을 구해서 나올 때면 옆에서 부축한다고 야단들이다.

뉴스 카메라가 촬영을 하고 있어서일까. 어쨌거나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IMF 때문에 온 사회가 타의에 의해 구조조정을 하는 것처럼 변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또 IMF 때문에 변하자는 말도 아니다.

이대로 살아가다간 아무것도 안될 것 같아 하는 소리다.

이것은 대통령도, 선생님도, 스님이나 목사도 지금까지 해내지 못한 일이다.

온 국민이 뭔가 마음속 깊이 느껴 스스로 자연스럽게 변화를 불러와야 할 것이다.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을 삼가고 옆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생활화하면서 우리의 태도를 점차 바꿔 나가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지도자들이 앞장서야 하는 것은 물론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예 이 사회에 붙어 살 자리가 없도록 해야 한다.

김영철〈진도그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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