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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밥통과 싸우는 미셸 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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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말이다. 지난해 10월 대통령 후보자 TV토론회에서 한국계 여성인 미셸 리(39) 워싱턴 교육감의 개혁을 지지한다며 한 얘기다. 워싱턴에는 “교육 분야에서 오바마의 귀를 잡고 있는 사람은 아니 덩컨 교육부 장관이고, 덩컨의 귀를 잡은 이는 미셸 리”라는 소문이 퍼져 있다.

덩컨은 시카고 교육감 출신이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호주에서 4년간 프로농구 선수로 뛰다 교육계에 몸담았다. 오바마가 농구를 즐길 때면 ‘녹수 갈 제 원앙 가듯’ 꼭 따라다닐 정도로 둘은 친밀하다. 그런 덩컨이 자주 대화하는 사람이 미셸이다. 두 사람의 교육철학은 같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려면 학교와 교사가 좋아야 하고, 나쁜 학교와 엉터리 교사는 퇴출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가 향후 5년간 부실 공립학교 5000여 개를 폐쇄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데엔 둘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미셸이 처음부터 교육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다. 그는 명문 코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집안에선 변호사나 의사가 되길 원했다. 미셸은 8일 서울대 워싱턴 동창회가 마련한 강연회에서 “교육정책 등을 공부하기 위해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 들어가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난 하버드를 좋아하나 네가 교사가 된다는 생각은 싫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미셸이 교육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 건 코넬을 졸업하고 ‘미국을 위한 교육(Teach for America·TFA)’이란 비영리기관의 교사 양성 과정을 이수하면서다. 그는 하버드 입학 전 TFA 소속으로 볼티모어의 빈민 지역 초등학교에서 3년간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첫해엔 좌절했지만 둘째 해부턴 보람을 느꼈다. 학생을 수준별로 나눠 개별 지도한 결과 실력이 쑥쑥 향상됐기 때문이다. 올 3월 인터뷰 때 그는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도 좋은 선생을 만나면 얼마든지 달라진다는 걸 볼티모어에서 확인했다”며 “그때부터 내 천직은 교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셸의 지론은 “모든 어린이는 훌륭한 교사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게 아이들의 권리다”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무능한 교사를 만나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가 ‘신교사 프로젝트(New Teacher Project·NTP)’라는 단체를 만든 건 우수한 선생님을 양성하고 충원하기 위해서다.

그런 그를 교사 노조에선 ‘교사에 적대적인(anti-teacher) 교육감’이라고 낙인찍고 흔들고 있다. 실력 없고, 태만한 교사를 재교육하고, 그래도 안 되면 퇴출시키겠다는 미셸의 ‘선생님 개혁’에 대항하기 위해 이젠 워싱턴 지부 외에 전국 교사 노조까지 개입했다. 하지만, 미셸은 미동도 하지 않는 눈치다. 그는 8일 강연에서 “노조가 직장을 보장하라고 하는데 한국 교육계에서 회자되는 철밥통이란 말이 생각난다”며 “어디서든 그런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상일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