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신영철 파문, 진정으로 재판 독립 위한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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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언제까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 것인가. ‘신영철 파문’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의 시선이 점차 따가워지는 것을 정작 사법부 내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당사자들만 모르는 것 같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어제 신영철 대법관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엄중히 경고’했고, 신 대법관도 법원 전산망에 사과문을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이 오늘 저녁 단독판사회의를 열기로 하는 등 사태가 쉽게 가라앉을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일부 판사들의 행동이 자칫 사법부 전체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켜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독재 시절 빚어진 ‘사법파동’ 때는 그래도 국민의 소리 없는 성원이 뒷받침 역할을 했다. 이번 파문은 재판의 독립성과 사법행정권의 경계선에 걸쳐 있어 사안 자체가 다르다. 대법원 진상조사단, 전국 법관워크숍, 윤리위원회를 거쳐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까지 나왔는데도 법원 내부 전산망이 붐비고 회의가 소집된다면 일반 국민으로서는 도대체 근본 배경이 무언가 하는 의구심과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한다’고 명시했다. 지금 사법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헌법이 규정한 ‘재판 독립’을 위한 순수한 움직임이라고만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사태가 진행될수록 사법부 내 이념 싸움, 내부 분열 측면이 짙어지는 기색을 아니라고 자신 있게 부인할 수 있는가. 이번 사태는 신영철 대법관이 재판과 관련해 판사들에게 e-메일을 보낸 시점부터 계산해도 넉 달 가량 지나서야 표면화됐다. 그 배경에 인사 문제가 끼어 있다는 법원 안팎의 시각은 또 무엇인가. ‘우리법연구회’라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주로 앞장서 문제를 제기했다는데, 일반 국민으로서는 법원에 ‘우리법연구회’와 ‘너희법연구회’가 따로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안하고 찜찜하기 짝이 없다. 누구나 법관은 헌법·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줄 알고 있다. 그런데 양심이 아닌 ‘성향’과 ‘이념’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면 누가 사법부를 믿고 법정에 출두하겠는가.

사태가 초래할 심각한 후유증에 비하면 신 대법관의 거취는 아주 작은 문제다. 근본적으로 사회 초년생이나 다름없는 사시 합격자들에게 법복이 주어지는 현행 법관 임용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커진 까닭을 새겨보아야 한다. 사법부 구성원들은 사법부 내 ‘저 편’이 아닌 ‘국민’을 보고 행동해야 한다. 특히 집단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나름의 절차를 거쳤는데도 계속해서 여론몰이나 할 때가 아니다. 사법부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다툼을 해소하는 마지막 절차이자 관문에 해당한다. 그런 곳에서 벌어지는 원색적인 다툼과 기(氣)싸움이 과연 정상적인지 스스로 짚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