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노 전 대통령 영장 청구 여부 ‘장고’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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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의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일까.

대검 중앙수사부가 지난달 30일 노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한 지 열흘이 넘었지만 임채진 검찰총장의 장고는 계속되고 있다. 이번 주에도 쉽게 결정이 나올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검찰 일각에선 “일러도 다음 주에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받은 100만 달러의 사용처에 대해 확인할 것이 있다”고 말했다. 권 여사를 추가로 불러 조사할 필요성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이미 100만 달러의 용처에 관련된 해명자료를 지난주 검찰에 제출했다. 권 여사에 대한 소환조사도 특별히 미뤄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법률적 문제 외에 또 다른 속셈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여론의 추이를 살펴보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려도 비난받을 가능성이 큰 탓이다. 결정의 시간을 늦추기 위해 노 전 대통령 측을 상대로 한 추가 조사의 필요성을 명분으로 내세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각에선 "수사가 부실하기 때문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금의 수사 결과로는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해도 법원에서 기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을 상대로 함량 미달의 수사를 해 놓고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라는 것이다. 불구속 기소를 전제로 ‘시간 벌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검찰이 지난주부터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한 수사로 방향 전환을 한 것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신병처리 결정을 미루는 한 요인이 될 것 같다. 천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 시점과 수위에 맞추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대검 중수부는 정치인을 수사할 때도 여야 간 균형을 맞췄다. 그러나 검찰 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늦어질수록 영장 청구의 명분을 잃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 검찰 스스로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인정한 셈이라는 것이다. 불구속 기소할 경우에도 “법리를 따지는 대신 눈치를 봐 결정했다”는 비난을 들을 수 있다.

이철재·이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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